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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23. 2022

C'est La Vie!

던져진 삶에 대해

시떼에서의 세 번째 토요일. 연애도 처음에나 22일, 100일, 200일 챙기듯 이제 아마 주말의 횟수를 세 보는 일은 이제 이곳을 떠나기 직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주말은 어쩐지 조금 슬픕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 평소보다 조금 더 민감하게 체감을 하게 될 때면, 시간의 유한함이 주는 특별한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스무 살 때 썼던 일기를 보면,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전지전능한 신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너는 이제 딱 일 년(혹은 한 달)만 더 살 수 있다"라고 선고한다면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거라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나의 자유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시작된(던져진) 삶이라는 가혹한 형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니체를 좋아합니다. 니체는 우리의 삶이 자신의 온전한 의지로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이 아무런 확실한 약속도, 기약도 없는 삶의 비극적 속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공황장애가 심했던 아는 분이 그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약도 먹고, 이런저런 상담도 받아보고 해 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는데도 오히려 증세가 제자리걸음이던 터에, 일본까지 건너가 공황장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치료사를 만나 그 병이 거의 완치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치료법은 굉장히 극단적이었는데, 깊은 수조 속에 다이빙 장비를 갖추고 10미터 이상 잠수한 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거기서는 마치 <인터스텔라>처럼 내가 거꾸로 있는지, 누워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이 두려워하는 본질과 마주하고, 그것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감각하게 되면 비로소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뒤로는 공황장애가 재발한 적이 전혀 없었다고.)

SF영화 <엔더스 게임>의 주인공 엔더는 적으로 등장하는 외계 종족을 무참히 격퇴하던 중, 이런 독백을 합니다. 


"적을 완벽하게 쳐부술 정도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 적을 사랑하게 된다." 


나는 엔더의 대사가 니체의 한 마디처럼 느껴졌습니다. 삶은 그 비극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그러기 위해 영원회귀를 바랄 수 있을 만큼 한없이 충실하게 사는 것. "이것이 삶이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긍정하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유와 자기 해방의 가능성을 맛보게 됩니다. 

C'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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