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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26. 2022

파리에서 한 달째

시떼 데자르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파리에 들어온 지 거의 딱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언제 이렇게 다 지나갔을까 싶을 정도로 시간은 가파른 비탈을 굴러 내려오는 돌덩이처럼 가속을 붙이는 것만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아쉬운 까닭에, 어쩐지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다 해내지 못했을까, 혹은 괜히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닌 걸까 하고 끊임없이 자아비판을 하는 나를 보며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거구나 생각합니다.


내가 여기서 만난 작가에게 내 작업실을 보여줄 기회가 되어 2주 동안 이만큼이나 작업했다고 하자 믿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파리에 오래 살고 계시는 선생님께 들려드리니 그런 이야기는 이곳에서 성실함을 증명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행위 자체가 납득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넘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이든 노동이든 그렇게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이곳의 문화이고, 그것이 온당하게 여겨진다고. 나는 진심으로 공감하면서도 좀처럼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조금 숨을 천천히 쉬며 걷자고 마음먹더라도 결국 정신 차려보면 늘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걸까요. 나는 두려운 것입니다. 도태되는 것,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가능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여기에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나는 도저히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서 작업과 생존을 위해 언제나 투쟁해 왔던 것입니다. 어떤 일이 가능한 상황에서 가용한 자원을 활용해 그 일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없었다면 작가로서 도무지 살아낼 수 없었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다른 방법도 있었겠지만, 나는 늘 최선의 방법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했습니다. 나의 오랜 동료 작가들도 그래 왔고, 대다수의 입장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요. 


물론 서로 다른 조건과 상황 속에서 어떤 방법이 맞고 틀리다는 이야기로 논쟁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행동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사고의 방향에 잠시나마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된 일 만으로도 어쩌면 이곳에서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큰 위안을 얻습니다.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과 만나게 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보내는 한 달째.  



2022년 4월 25일,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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