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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29. 2022

다시 산티아고로

9년 전 나를 만나러




9년 전, 스물여섯의 나는 동유럽의 작은 나라인 리투아니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일 년을 보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젊음과 무지밖에 없었던 그때,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던 이유는 어쩌면 그때의 내가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반항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례길이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이름의 도시로 향하는 여정으로, 여러 루트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길은 '까미노 프란세스', 일명 '프랑스 길'인데,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대에 위치한 생장이라는 도시에서 출발해 산티아고까지 약 80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가는 행위를 '순례길을 걷는다' 또는 '까미노를 걷는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곱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도시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유럽에서는 독실한 신자들이 야곱을 경배하기 위해 그가 잠든 산티아고를 향해 끊임없이 순례 여행을 떠났고,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순례 루트가 개척되며 길 위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과 순례자의 문화가 생겨나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9년 전 그 길로 떠날 때에도, 지금도 나는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래전 그때, 그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서로에게 늘 물어보았던 질문이 있습니다. "너는 왜 걷니?" 

같은 순례자로서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한 스몰토크이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주고받으며 길에서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내가 그렇게 끊임없이 질문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길을 걷는 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일들이 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십 대였던 나로서는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인생이라는 길에 대해서 상상할 때면,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마음이 분분했으니 무언가 정답 비슷한 것이라도 얻어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길을 걸었던 9년 전 당시는 아무래도 학기 중이었고, 800Km 풀코스를 완주하기에는 주머니 사정도 달렸기 때문에 절반인 400km 정도만 걷기로 계획했고, 중간의 메세타 지방을 건너뛰어 15일 만에 산티아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내가 바라던 정답은 없었고, 한 달 넘게 시간을 내서 풀코스를 걸었더라도 아마 인생을 관통하는 어떤 깨달음 따위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다만 어깨를 파고드는 10kg에 달하는 배낭의 무게와 다리와 발바닥의 찌르는듯한 통증을 내내 느끼면서도 가장 위안이 되었던 것은, 걷다 보면 분명히 도달하는 확실한 목적지에서의 안온한 휴식, 성취감이 예비되어 있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교통수단이 극도로 발달해 지구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지 이미 오래인 좁아진 세상에서 가장 원시적인 이 여행법은 오히려 그러한 사실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부여했기에 어쩌면 고행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이 도보여행은 내면으로부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무언가 다른 차원의 사고를 위해 광야에서 다양한 방식의 고행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십 대였던 그때, 길 위에서 나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들을 다시 발견하면서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기뻐하고 슬퍼하는 시간을 보냈던 일들은 까미노의 풍경들과 함께 오래도록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른다섯의 생일을 맞이하는 내일, 다시 그 길 위로 떠나 9년 전 채우지 못한 절반을 채우기로 합니다. 길 위에서 그때와 지금의 나, 그리고 다가올 나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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