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소냐의 추억
4일 차
랄라소냐 - 팜플로나 15km (65km / 386km)
랄라소냐에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9년 전 순례길을 걸었던 그때, 기진맥진해서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어느 스페인 할아버지 순례자를 만났다. 이제 막 여장을 풀고, 곧바로 샤워실로 달려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를 발견한 그는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랄라소냐의 공립 알베르게는 따로 저녁을 준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공용 주방에서 직접 식사를 만들어 먹거나 나가서 사 먹어야 했는데, 마침 저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반가운 제안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한 명의 손님이 더 있다고 했는데, 곧이어 일본에서 온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순례자가 나타났다. 그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스페인 할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관계로, 편의상 파블로라고 부르겠다. 일본인 할아버지의 이름은 노구치였고, 정원사로 평생 일을 해 왔다고 했다.
파블로는 우리 둘을 알베르게 뒷마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혀놓고는, 와인과 브랜디와 파스타와 베이컨, 계란 요리를 끝도 없이 내어 놓았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건배를 하고, 그들의 자녀들과 가족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말 웃긴 건, 우리 셋 다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는 거다. 파블로는 영어를 못했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했고, 노구치는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다. 다만 노구치 할아버지가 띄엄띄엄 서툰 영어로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완전히 자유야."
식사를 마치고 파블로 할아버지는 우리 둘을 데리고 동네의 바에 데려가 또다시 술을 사주고, 마지막에는 에스프레소까지 먹였(?)다. 인사불성이 된 우리 셋은 국적과 세대와 그 외 잡다한 모든 경계를 넘어 어깨동무를 하고 파블로 할아버지가 목청껏 불러 재끼는 스페인 노래를 괴상한 발음으로 되는대로 함께 따라 부르며 동네를 활보했다.
이것은 나의 처음이자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지막인 술주정이었다. 그래서 랄라소냐라는 마을 지명은 어쩐지 내게 '랄랄라'하는 노랫가락처럼 기억된다.
그런 감상에 젖어 다시 찾은 랄라소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알베르게에서 나는 호주에서 온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순례자 존을 만났고, 내가 저녁을 사 먹으러 나간다고 하자, 같이 가도 되겠느냐고 물어봐주었다. 호주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마치고 왔다는 그는 나의 격 떨어지는 영어를 사려 깊게 이해해주었고, 내가 잘 알아들수 있는 분명하고 쉬운 발음과 단어로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9년 전처럼 인사불성의 추억을 다시 쓰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고,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소식을 전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이제 다음 목적지인 팜플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메세타 지방을 건너뛸 예정이기에 아마 앞으로 그를 더 이상 볼 수는 없을 터였다. 해가 질 무렵 알베르게의 식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 그에게 나는 따뜻한 차 한잔을 끓여 건네며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부디 건강하게 순례길을 마치자고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맑은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자신의 첫 한국인 친구가 나여서 무척 기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랄라소냐는 언젠가 또다시 찾아올 약속을 예비하는 따뜻하고 나직한 음률 위의 가사가 되어 마음속에 새로운 추억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