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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젤이나임팔라 Nov 10. 2023

미스터 그린씨

내 반려식물에 대하여

1년 간 미국 유학 비스무리 했던 시절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서 동생과 함께 지냈다.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져서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자취방으로 이사를 할 때의 몇몇 장면들은 또렷이 기억난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우리가 쓸 물건을 챙겨서 1.5톤 트럭에 실었다. 트럭은 렌트를 했었다. 물건을 다 싣고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기 전에 담배를 한대 태우셨다. 매캐한 담배 연기에서 슬픔이 묻어나올 수도 있다는 것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엄마는 다 큰 아들 둘을 보내면서도 있지도 않은 딸을 시집 보내는 것 같이 마음이 서운하다고 했다. 입김이 나오던 겨울 어느날이었다. 


부모님은 경기도 양주에 계셨다.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갈 일이 잦았다. 병원은 서울에 있었고, 아침 진료가 잡히면 아주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셔야 했기 때문에 이따금씩 우리 자취방에 들러 주무시고 가시곤 하셨다. 


아마 미스터 그린씨를 엄마가 사주셨던 것은 우리 자취방에서 주무시기 시작한 첫날이었던 것 같다. 집 근처에서 돈까스 비슷한 어떤 음식을 먹고(엄마와 고심해서 고른 메뉴였으나, 인상 깊진 않았다) 자취방으로 향하던 중 엄마는 갑자기 꽃 가게에 들렀다. 그래도 처음 가는 건데 화분이라도 사줘야 겠다는 어떤 말을 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꽃집 주인장에게 잘 자라는 식물로 추천해 달라고, 그렇게 미스터 그린씨를 들이게 되었다. 


미스터 그린씨는 스파티필름이라는 식물이다. 볕이 잘 들지 않아도 물만 잘 준다면 꽤 잘 자란다. 게다가 종종 꽃도 피워내 혹시 내가 원예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 정도로 잘 자란다.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 볼품이 있는 식물은 아니다. 그냥 잎사귀가 넓은 풀처럼 생겼다. 워낙에 심심하게 생긴 식물인지라 보다못한 나는 화분에 표정도 그려넣었을 정도다. 이름은 붙여주고 싶은데, 딱히 이렇다할 특징이 없어서 그냥 미스터 그린씨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스터- 로 시작하는 영문 이름에 '씨'라는 우리말을 붙이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미스터 그린'은 뭔가 삭막한 느낌이다. 사실 미스터인지 미세스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나는 미스터 그린씨를 보며 엄마를 생각하곤 한다. 엄마는 이 화분이 내게 엄마를 추억하도록 만들게 될 것이란걸 알고 계셨을까. 미스터 그린씨라도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미스터 그린씨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집에서 잘 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기에는 별다른 차이는 없지만 작은 미스터 그린씨들이 밑둥 근처에 자라나고 있다. 내년 봄에는 이 작은녀석들을 다른 화분에 옮기려고 한다. 그래서 동생에게 줄 것이다. 


삭막한 자취방에 초록색 풀 한포기를 들이게 했던 엄마의 마음은 이렇게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다고, 작은 미스터 그린씨를 건네면서 그렇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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