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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젤이나임팔라 Nov 14. 2023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취미에 대해

미국에 간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방인이었던 내가 이렇다 할 관계도 취미도 없던 시절 중에 있었던 이야기다. 


다니던 연구소는 출퇴근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기분 내키는 대로 퇴근을 하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퇴근하고, 날씨가 흐린 날이면 왠지 울적한 마음에 그냥 퇴근이 하고 싶었다.


시간이 많아도 딱히 할 게 없었던 나는 한적한 호숫가를 뛰거나 책을 읽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고독하다면 고독했을, 충만했다면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런 생활 중에, 내가 살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해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그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있었던 미국의 북서부는 태평양과 인접해 있다. 태평양(Pacific Ocean). 처음 발견한 사람이 항해할 때 즈음에 마침 바다가 너무도 잔잔하고 평화로워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 이름과는 달리 태평양은 세계 모든 육지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큰 바다다. 그만한 스케일이니, 그와 접한 해변도 아름답지 않을까 싶어 찾아가보았던 차였다.


버스를 한번 정도 갈아타서 도착했지만 해변은 내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고운 모래나 어디 열대섬의 하얀 산호모래와는 다른 해변이다. 옅은 잿빛 모래 위에 아주 오래되었을 것 같은 커다랗고 투박한 유목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거친 파도에 떠밀려온 듯싶었다. 시애틀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도 해변의 쓸쓸한 분위기에 한몫을 더했다. 그래도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공놀이 같은 것을 한다거나,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저마다의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에게만 쓸쓸한 해변이었으리라. 


나는 가만히 앉아서 느릿하게 저물어가는 해와, 바다와, 사람들을 보았다. 새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음악도 듣지 않고 오롯이 앉아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기 전 아주 옛날의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마 대부분이 아니었을까. 농사도, 집도 없던 시절이다. 먹을 것이 풍요로운 지역은 간단한 채집과 수렵만으로도 적은 인구를 충분히 부양하고도 남을 만큼의 생산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남는 시간에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저 이렇게 풍경 좋은 곳에 앉아서 먼 곳을 바라보곤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모닥불을 피워 놓고 흔들리는 불꽃을 보며 내면으로 침잠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즘과 같이 바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이런 권태에 당혹감을 느끼겠지만, 사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인류의 시간을 하나로 엮어 놓고 본다면,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을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게으른 시간은 인류라는 생물의 본질적 특성상 상당히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그 뒤로도 나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어 시간쯤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거나, 도시의 야경을 ― 시애틀의 야경은 최고다 ― 보곤 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도 있고, 괜찮은 것들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멍 때리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머리를 비우는 데에 있었다. 여러 가지 상념들을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왠지 얻은 것은 딱히 없지만 개운한 마음이었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짧게 보면 한 주를 살아가는 중에서도 그렇고, 길게 보면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가던 지난 몇 년 동안에 이런 여백이, 휴지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원래 내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와는 멀어져버린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 앉아서 내가 가려고 한 길과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 그 때를 떠올린다. 돌아보면 그 공백기는 내 인생에서 유효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오랜시간 정리되지 않았던 학위논문의 골자가 머릿속에서 잡혀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고요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때의 고독과 적막, 한적함이 이내 밀려와, 당장 힘들게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감싸버린다. 그리고 나면 그 문제들은 그저 해변에 밀려온 오래된 통나무처럼 별 볼일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다. 어쩌면 이 시간이야말로 모든 관계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게 내가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실존적인 시간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는 어떤 나이고 싶은 것인가.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던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이었던 내가 이렇다 할 관계도 이렇다 할 취미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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