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젤이나임팔라 Nov 17. 2023

감기

며칠 전부터 잔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괜찮아지겠거니 했는데 열도 슬금슬금 오르더니 기어코 39도를 넘어섰다. 밤새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에 가보니 요새 유행이라는 A형 독감이라는 진단과 함께, 정신을 차려보니 21만 원짜리 영수증 ― 검사비용, 치료제, 수액 등 ― 을 들고 병원 문을 나서고 있었다. 치료제와 수액을 맞아도 단번에 나아지지는 않았다. 약 기운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기운이 떨어진 건지 계속 졸려서 주말 내내 비몽사몽으로 지냈다. 지독한 감기였다. 


다행히 주말이라 장모님이 마침 집에 와 계셔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아 주셨다. 아기와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저 문밖으로 들리는데 나만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늘어져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아픈 와중이라도 무언가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에 보탬이 되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체력도 정신력도 없었다. 몸과 함께 정신도 약해졌는지, 나 자신이 짐짝처럼 느껴졌다.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안마다 한 명씩 있는 오래된 환자가 느끼는 기분이 이와 비슷할 것 같다고. 내가 만약 그런 입장이 된다면 지금 이 무기력함, 미안함, 쓸쓸함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것도 기약이 없는 병이라면 정말 힘들 것이다. 


약이 뒤늦게 들었는지 몇 번의 깊은 잠에 들어 땀을 흥건히 빼고 나니, 열도 내리고 몸도 이내 개운해졌다. 다행스럽게도 기약이 있는 병이었고, 나는 다시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아팠던 며칠을 곰곰이 곱씹어보니, 그런 환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환자 체험을 한 셈이다. 한번 감기에 걸리고 나면 다시 같은 감기에는 잘 걸리지 않듯이 이번 경험은 나에게 예방접종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환자가 되지는 않으리라. 건강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은 감기처럼 성가신 것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교훈을 주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