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뿌리를 드시나요?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에 대해
이 세계에 태어나 삼십몇 년을 살고 있는 시점에서, 나를 스쳐간 사람들이 무수히 많을 테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6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에 나는 주기적으로 지인들과 만나 신앙 공동체 같은 모임을 가지곤 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는지, 추수감사절을 접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정집에 둘러앉아 소박하지만 따뜻한 식사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식사 중에 한 친구가 김치를 집어 먹는데, 배추 뿌리를 먹고 있는 걸 발견했다.
"K는 배추뿌리를 먹네?"
"네. 전 배추뿌리 좋아해요."
그동안 배추뿌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음식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나는 그게 적잖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배추뿌리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K는 맛있다는 듯이 배추뿌리를 아삭거렸다.
K는 훤칠한 키에, 약간 마른 몸,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눈이 크고 깊은 청년이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언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보니, 한 차례 큰 심장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생과 사의 경계를 건넜다고 하니, 그의 과묵한 성격과 생각이 왠지 한층 더 깊어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나도 김치에 배추뿌리가 보이면 집어먹곤 한다. 놀랍게도 똑같이 김치 맛이 난다. 배춧잎이나 줄기와는 다른 아삭거리는 식감이 훌륭하고, 맛이 잘 배어있다. 비교하자면 깍두기와 비슷하다. 매큼한 배추뿌리를 입에 넣고 어석거리고 있을 때면 이내 K가 떠오른다. 아주 친밀하게 지냈던 사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큰 키에 마른 몸, 맑았던 눈과, 큰 심장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K가 내가 배추뿌리를 먹을 때마다 자신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서정적인 모습이 아닐까 막연하게 상상해 보지만, K를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않을 확률이 크다. 게다가 나는 K처럼 키가 크지도, 눈이 깊지도 않다. 배추뿌리 같이 엉뚱한 소재를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소환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일지도 모른다. 어딘가 늘 어설프게 살아왔던 것 같지만, 바라건대 어쩌면 괜찮은 구석이 한 군데쯤은 있었기를.
부디 좋은 면만 기억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