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아내와 커피를 한잔씩 내려서 테이블에 앉았다. 아내는 커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버터바라는 것을 내왔다.
비닐 포장지에 싸여있는 버터바를 집어 들어 살펴보니 두꺼운 직사각형 케이크 같은 모양이다.
'제품명: 버터바'.
"버터바? 이런 것도 있어? 버터 함량이 35%라니 진짜 버터바네."
순간 아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기억 안 나? 지난번에도 먹었잖아."
"기억 안 나는데."
"심지어 오빠는 그때도 버터바를 보고 똑같이 얘기했잖아. 버터바? 이런 것도 있어? 하고."
"내가 그랬단 말이야? 전혀 기억이 안 나네."
말을 마친 나는 버터바 한 귀퉁이를 포크로 잘라내 입으로 가져갔다.
"오, 커피와 잘 어울리는 훌륭한 맛이군."
"그때도 오빠는 커피랑 잘 어울린다고 했어."
나는 이내 머쓱해지고 말았다. 사실 이런 적이 많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무언가를 먹거나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신혼 초반 때는 이 때문에 아내가 삐지기도 했으나, 나라는 사람에 대해 차차 알게 된 다음엔 그냥 수용하기로 한 듯하다. 사실 머리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종류의 기억에 있어서는 완전히 젬병이다.
반쯤 남은 옅은 갈색의 버터바를 노려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버터바를 먹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는가.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마음챙김'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하면 명상이다. 얕은 경험에 비추어 보면, 흔히들 명상은 생각을 비우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나마 '호흡'에 집중을 하라고는 하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어렵다. 조금만 가만히 있어도 오만가지 생각이 일어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종 기억과, 해야 할 일,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전문가들은 그런 생각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이 길었으나, 이 마음챙김이라는 것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요새 나는 쉽게 현재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금세 다른 것이 생각나거나 걱정이 밀려온다. 그렇다. 인정하긴 싫지만 불안한 것 같다. 마냥 낙천적이었던 20대 시절의 나와는 많이 달라졌다. 마음을 편히 먹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행복한 지금이 쌓여 행복한 미래가 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한동안 잊고 살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작은 대화, 늘 다니는 길거리, 아기의 웃음, 소박한 음식에서도 행복 한 조각씩은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다시 천천히 노력해 봐야겠다.
그나저나 매번 내가 어떤 물건을 보거나 뭔가를 들었을 때마다 반응이 늘 동일하다는 아내의 지적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어쩌면 사람은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뇌에서 정밀하게 짜인 알고리즘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흡사 내 머릿속에서 작은 원숭이가 들어앉아서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작은 원숭이는 '버터바'를 보면 수만 가지의 버튼 중에서 '버터바 이야기'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내가 '버터바? 이런 것도 있어?'라거나 '오, 커피와 잘 어울리는 맛이군' 따위의 정형화된 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원숭이 같은 것에게 버튼이 눌리는 대로 살지 않으려면 정신을 차리고 지금 현재에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