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독실에서 환자 중심 치료로의 패러다임 변화
인공지능을 위시한 의료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들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구글 검색을 조금만 굴려보아도 기계학습을 통한 영상분석이 전문의의 판독률을 상회했다는 내용의 기사 혹은 논문을 자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런 뉴스들이 연이어 나왔기 때문일지, 병리학과와 영상의학과의 자리는 딥러닝 기술을 위시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는게 아닌가 하는 염려 역시 주변에서 종종 들려옵니다.
실제로 북미영상의학회(RSNA)에서는 개최한 "두개내출혈 진단 대회"라는, 의료영상을 기계학습으로 분석해 뇌출혈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우승은 텐센트 소속의 SeuTau라는 사람이 이끄는 그룹에서 차지하였네요.
위에 첨부한 포스트에서는 카카오 브레인에서 쓴 딥러닝 기술을 의료영상에 접목했을 때 어떤 활용이 가능한지를 일부 분석합니다. 병리학에서는 조직 슬라이드 사진을 분석해서 해당 조직의 정상유무를 판단하고, X레이 사진과 같은 이미지에서는 심비대가 있는지, 의심되는 질환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등을 파악합니다.
상기한 기사들에서 보여주듯, 이런 식으로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판독해야 할 내용을 점차 기계가 판독할 수 있게 되는 상황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 혹은 지망생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북미영상의학회 소속 발레리 P. 잭슨 회장이 최근에 이에 관해 인터뷰하였습니다.
잭슨 회장이 한 말의 요지는 환자들과의 소통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MRI 연구실에서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학부 2학년이라 지식이 일천하던 시절, 지도교수님과 공동연구를 진행하시는 의대 교수님 한분께 교수님은 하루에 환자를 얼마나 보는지를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교수님은 웃으면서 자기는 환자를 직접 보지는 않는다 말씀하시더군요. 환자를 본다기보단 다른 의사들과 영상 판독 소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언급한 잭슨 회장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실시간으로 수많은 영상을 처리해야 하면서도 빠른 판독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 중심 진료에 전념하기 어렵다”."
하지만 끝에 잭슨 회장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지만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직접 환자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환자 중심 진료의 관점을 넓혀야 한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판독실에서 나와 환자와 직접 접촉을 해야 한다. 환자들이 분명히 이를 원하고 감사해할 것."
예전 에릭 토폴 박사의 저서 딥 메디슨(Deep Learning)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읽은 적 있습니다. 토폴 박사가 환자로서 영상의학 전문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자기 자신의 영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설명이 환자의 (스스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잭슨 회장의 말도 이와 상통합니다. 그녀는 “실제로 일부 유방 진단검사에서 환자들에게 설명을 진행해본 결과,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의사동료들을 포함해 환자와의 연결성을 높이면 직업만족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접촉이 늘어나면 번아웃될 수 있다는 우려와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판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환자들을 대하는데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게이트키퍼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면, 환자는 스스로의 치료를 위한 정포를 다양한 각도에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거라 잭슨 회장은 말합니다.
앞서 말했듯, 이미 다수의 영상을 판독해야 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환자에게 설명까지 맡는다면 상기한대로 번아웃이 올 수 있지 않냐는 우려 역시 신빙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잭슨 회장과 토폴 박사와 같은 전문가들은 AI 프로그램이 해당 작업을 도울 수 있다 주장합니다.
실제로 알고리즘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영상 판독을 도움으로서, 영상의학 전문의가 해당 판독 정보를 환자에게 설명하는데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거라 생각됩니다. 이 아티클을 시작하며 언급한대로 기계가 의사의 일자리를 뺏는게 아니라, 의사로 하여금 보다 나은 환자 경험을 제공하게끔 하는 도구, 내지는 파트너로서 자리할 수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펜실베니아 의과대학 테사 S. 쿡 교수는 지난 2016년 5명의 영상의학과 전문의, 그리고 50명 이상의 환자로 구성된 가상 영상의학 상담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의 90%가 상담을 통해 건강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변화는 결코 영상의학 전문의에만 국한되진 않아보입니다. 지금 들으면 다소 요원하기는 하지만, 병리학과 전문의들 역시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겪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영상소견의 이상을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병리소견의 이상을 설명하는 것보다 직관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가능해보입니다.
상기한 의견들과 같이 머지 않아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판독실에서 다수의 시간을 보내기보다 환자에게 결과를 설명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소위 말하는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또 이런 결과로 보다 많은 환자들이 스스로의 질병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