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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 이규봉 Apr 02. 2020

대청호 오백리길

제1구간 두메마을길

일시 : 2020년 3월 21일 토요일

구간 : 대전 대청댐 물문화관에서부터 이현동 억새밭까지 11.5km

정보 : 이현동 버스정류장에 3시 전에 도착하면 신탄진으로 향하는 막차를 탈 수 있다.     


걷고 싶은 곳은 참으로 많다. 성 야고보의 시신을 옮긴 길이라는 프랑스에서 출발해 스페인으로 가는 '산티아고의 길', 이것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진 제주 ‘올레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둘레길이 시작된 ‘지리산 둘레길’, 부산에서 시작해 최북단 고성까지 동해 바닷길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 정약용 선생이 유배 다닌 길을 따라가는 강진의 ‘남부유배길’ 등등. 우리가 걸어보고 싶은 길들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이미 수년 전 다녀왔고, 또 어느 곳을 걸어 볼까 늘 생각하고 있었다.     


‘산티아고의 길’은 당분간 열외, 멀기도 하지만 아직은 특별히 그곳을 걸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걸으니 운치 있을 '해파랑길'도 따가운 햇볕 아래 걸을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질 않아 잠깐 보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힘들어 하지만 그 덕에 공기도 맑아지고 집안에만 박혀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려 우선 가까운 대청호 둘레길로 향했다.      


대청호 둘레길은 댐이 만들어지면서 그 주변에 살던 많은 수몰민들의 애잔함이 전해져 오는 곳이다. 논이며 밭이며 살아온 터전들이 수장되는 것을 보는 그 맘이 오죽했으랴! 댐과 그 주위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 집들과 논, 밭을 보며 이곳에 살았던 주택 수몰민들의 심경을 헤아려본다.     


오늘 시작한 1구간은 '대청호 물문화관'에서 시작하여 '이현동 억새밭'까지 이어진 길로 11km 남짓이니 평소 우리의 걸음으로 보면 3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명확하지 않은 한 이정표로 중간에 헤매는 바람에 4시간 정도 걸렸다. 출발 초기 산으로 오르다 숫고개에서 보조댐으로 내려오는 도중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었으나 잘못 읽어 정자가 있는 쪽으로 가게 되어 되돌아왔다. 이곳에선 이정표에 표시된 캠프장으로 갔어야 했다. 곳곳의 이정표는 대체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평소라면 대청호를 순환하는 대전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돌아올 수 있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운행하지 않았다. 동네 주민에게 물으니 3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하여 부리나케 정류장으로 갔으나 배차 간격도 길지만 막차를 간발의 차이로 바로 눈앞에서 놓쳐버렸다. 분명 시간 안에 도착했지만 그 버스가 미리 출발했기 때문이다. 외곽지역이라 근처에 호출할 택시도 없었으니 하는 수 없이 다시 두 발로 걸어 나올 수밖에! 차가 주차된 곳으로 다시 되돌아와야 했기에 무려 7시간이나 걷게 되었다.     


우리는 달리거나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는 작년에 10km 마라톤을 완주한 후 족저근막염을 앓았다. 쿠션 있는 운동화를 신었어야 했는데 되는대로 신었다. 아직도 자신이 청춘인지 아는가 보다. 손자까지 둔 할매가! 2개월 동안 고생하더니 달리기는 포기하고 걷기만 한다. 오늘도 거의 23km를 걸었으니! 왼발이 조금 불편하다고 한다.      


차도를 따라 되돌아 나오는데 바로 옆에서 계속 쌩쌩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김밥 두 줄과 작은 물통 1병만 가져온 터라 갈증도 났다. 오는 도중 도로 옆에 우뚝 서 있는 '짬뽕마을' 이라는 입간판이 보여 짬뽕과 짜장 그리고 맥주 한 병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깔끔하고 정성 가득한 음식이라 기분 좋게 식사했다. 계산하면서 입소문 내주겠다고 했다. 꽤 괜찮은 음식점이어서 다음에 아이들과 대청호 드라이할 경우 꼭 들리고 싶다. 


암튼 힘들게 걸었다. 저녁은 며칠 전 남도 여행 중 해남의 양조장에서 직접 사 온 해창막걸리에 라면을 안주로 대신하면서 생각해 본다. 오늘은 다소 무리하게 걷긴 했으나 우리가 살아 있음이 느껴져 좋다. 걷는 일은(특히 산길은) 생각할 좋은 기회를 준다. 걷노라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어린 새싹 두 손주는 태어난 것만으로 이미 효도를 다 하고 있다는 생각!     


휑하니 앞서 가버린 남편은 내게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 며칠 전 청산도에서 배 떠날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느라 걸음을 재촉하여 걷고 있는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힘없다며 느기적 느기적 걸으며 애를 태우던 남의 편이 오늘은 휑하니 앞서 가버리니. 근데 실은 초반은 남편이 빨리 걸어도 후반은 아내가 더 빨리 걷는 경우가 많다.     


대체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갈까? 걱정을 태산같이 했던 두 아들이 지금은 둘 다 기특하게 잘 헤쳐나가며 심성 곱고 바르게 잘 자란 두 며느리랑 알콩달콩 잘 살아주니 참 감사하다는 생각! 늘 고민하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생을 마감하게 될까?’라는 생각! 이런저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머릿속으로는 연신 글을 쓰면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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