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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 이규봉 Apr 04. 2020

코로나 19와 지구촌 인간

코로나 19에 의한 고통은 인간의 자업자득

지금은 지구촌 어느 곳도 비켜 갈 수 없을 정도의 대 유행병이 되어 버린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 19는 벌써 4개월째 접어든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바이러스의 확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종 전염병의 창궐은 인간이 동물들을 가까이 끌어들임의 대가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혹시 조물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들이 그들 동물의 서식지를 조금씩 조금씩 무자비하게 침범해버려 그들의 안식처를 없애 버렸으니,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동물들은 인간들에 대한 원망이 오죽하겠는가!      


말 못 하는 짐승이 뭘 아느냐고? 이건 순전히 인간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다. 동물도 나름대로 의사소통의 수단이 있음을 인간들이 애써 모른 채 할 뿐! 애완동물이라며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마치 내 소유물인 양(언제 그들이 인간과 살겠다고 했던가? 그들의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물어나 보았는가?) 잡아 오고 강제로 번식시켜 오로지 인간에 의해, 오로지 인간을 위한 삶을 유지하게 하며 마치 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듯 만족해한다.     


강아지들을 한 번 보라. 언제 그들이 옷을 원했는가? 입히고, 머리 자르고, 다듬고 온갖 난리 법석을 떤다. 순전히 인간들의 관점에서 이 일들이 행해진다. 조류독감이라도 유행하면 애꾿은 닭들은 대량으로 살처분되고, 광우병이 발생하면 죄 없고 순하디 순한 눈 껌뻑이는 소들을 살처분한다. 거기에 돼지까지! 살아있는 목숨 그대로 매장당하는 그들의 눈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말 못 하는 그들이 언제 죽고 싶다던가! 참으로 이런 무자비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우리 인간의 엄청난 죄과를 어디 그 누구에게 용서를 구한 들 죄가 감해질까! 만약 이 땅에 부처님이 다시 오신다면 참으로 기막혀 말문이 막힐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미물들의 생명 존중에 대해 역설한 분이 아니던가!      


또한 예수가 언제 이웃이야 죽든 말든 본인들만 구원받을 양으로 주일 예배 보러 모이라고 했을까? 지금의 이 엄중한 시기에 말이다. 예수는 오히려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는 즉시 멈추라고 했을 것이다. 입으로는 예수 믿는다고 외치면서 그들의 행위는 전혀 반대다. 종교는 인간의 존재 다음에 생각해 볼 문제다. 인간이 없는데 무슨 종교가 있겠는가? 예수가 재림한다면 참으로 예수의 뜻과는 멀어도 너무나 멀리 살고 있는 이런 인간들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참으로 기가 막힌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함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종교의 자유는 타인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수행한 후 외칠 수 있는 일이다. 코로나 19는 동양인을 미개인 취급하며 모멸감 주고 무시했던 저 고귀한 유럽인들의 민낯(근거 없고 안하무인격인 그들만의 어이없는 자만심) 실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재기하느라 줄 서고, 마트 진열장의 텅 빈 선반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품격은 겨우 그 정도였던가? 그러면서 그리 터무니없는 우월감으로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다니! 영어권에서 6년 세월을 살다 왔지만 그들이 이런 품격을 갖춘 사람들이었음을(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 미처 몰랐으니 지금 느끼는 놀라움의 강도는 참으로 크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인종을 차별하며 무시하고 큰 소리 떵떵 치며 날뛰다가 큰 코 다친 인간들의 저 끝없는 얄팍함과 저열함이란! 참으로 실망스럽고도 실망스럽다.      


지금 현상들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 이야기했던 우리에게 장차 닥칠 미래의 서막일까? 하라리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완전 실업 시대가 적어도 몇십 년 이내인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것이라 지구촌 인간들은 마치 원시 공동체 생활과 같은 삶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 했다.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모든 것들이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이 있는 삶! 현재 코로나로 인해 무기력해진 개인의 삶은 그런 미래에 대한 서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코로나 19는 현재 지구촌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각성하고 깨우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미치게 됨을 알려주는 예고편이 아닐까?     


암튼 작금의 코로나 19에 의한 고통은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자연을 파괴한 대가 아니던가? 모든 지구촌 인간들은 자연은 다스리거나 파괴할 대상이 아니고 가능한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이 매우 필요하다. 이런 어려움에 그나마 우리나라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슬기롭게 대처할 준비가 거의 다 되어 있었음에 감사해야 한다. 또한 미래에 또 다른 예기치 못한 재난이 덮쳐올 때 우릴 보호해 줄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한다. [又玄과 松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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