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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 이규봉 Feb 11. 2020

이발

작은 행복

요즈음은 남자들도 이발을 미장원이나 특화된 남성 전용 이용실에서 많이 한다.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자신만의 멋을 부리려면 전통적인 이발소보다는 아무래도 그러한 곳이 좋을 듯하다. 나도 주로 남성 전용 이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특별히 찾지도 않았지만 내 어렸을 적 이용했던 전통적인 이발소를 내 주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그러한 이발소가 있다. 점심에 자주 찾는 중국집 옆에 있는데 생긴 지 매우 오래되었음에도 알아보고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발에 관한 옛 추억이 떠올라 호기심에 한 번 들려보고는 이후 매년 서너 번씩 이용한다.

도마동 배재대학교 정문 쪽에 경남상가 2층에 그 이발소가 있다. 70대로 보이는 부부 둘이서 운영한다. 남편은 이발사 아내는 면도사. 아마도 평생 이발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켰을 것이다. 지금은 소일거리로 삼는 듯 손님이 매우 드물지만 거의 매일 문을 열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 이발소에 대해 말해 보았으나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젊은 학생들 이발은 어려서부터 엄마 따라 늘 미용실에서 해왔을 것이고 그래서 그 분위기가 좀 낯설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처럼 나이가 60이 넘은 장년은 옛날 이발소의 추억이 아스라이 남아있을 것이다.

정면에 거울이 있는 고풍스러운 전용 의자에 앉으면 이발사가 흰 가운으로 목 아래를 전부 덮어준다. 특별히 요구하는 스타일도 없으니 “조금만 다듬어 주세요.” 하면 된다. 오래된 가위로 익숙하게 머리를 사각사각 잘라가며 다듬어 주고 마지막은 비누 역할을 하는 화장품을 구렛나루와 목 주변에 묻혀 길쭉한 면도칼로 반듯하게 마무리를 한다. 면도만 빼면 여기까지는 보통 남성 전용 이용실에서도 볼 수 있다.

다음엔 면도사가 와서 의자를 눕히고 얼굴에 화장품을 묻혀가며 정성스레 면도를 한다. 면도할 때마다 난 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눈을 감고 얼굴 위를 오르내리는 그 날카로운 면도칼을 생각하며 제발 나를 베지 말기를 기원한다. 과거에는 가끔씩 손님을 면도칼로 그은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면도할 때만큼은 신경 쓰고 얌전해질 수밖에 없다. 단 한 번도 나의 기대를 저버린 적은 없지만 그래도 늘 기도한다.

얼굴 전체에 비누 대신 화장품을 바르고 이마부터 살살 민다. 다음엔 양쪽 눈썹과 눈 사이를, 그리고 얼굴의 넓은 면과 콧등, 그리고 코 밑과 입술 아래를 살살 면도한 후 턱 주변을 면도한다. 귀에 화장품을 바른 후 귓바퀴, 귓불 그리고 귓구멍 입구까지 살살 아주 살살 면도칼로 긁는다. 그때의 그 느낌! 받아본 사람만 안다. 면도가 다 끝나면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고 눈썹을 정리해 주고 코털을 잘라준 후 귓속 털을 제거해 준다.

“다 됐습니다. 머리 감으러 가세요”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후’ 하고 내쉬며 오늘도 무사했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면대로 간다. 그러면 다시 이발사가 머리를 감겨준다. 내가 하는 일이란 세수하는 일뿐이다. 세수를 마치고 다시 의자에 앉으면 마지막으로 조금 더 다듬어 주고 드라이어기로 머리를 말려준다.

“난 대머리니까 이발비 반만 내도 되죠? 허어! 그러세요.” 어디 그럴 수 있나! 이발과 면도, 그리고 머리 감기까지 모두 다 해주는데 더 주지는 못할지언정 깎을 수야 있나? 가성비 최고이면서 동시에 옛 추억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조마조마한 기분까지 느끼게 해 주는 전통적인 이발관.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미용실이나 남성 전용 이용실보다 더 포근하고 이발을 마치면 기분이 아주 상쾌해진다. 예전에는 ‘안마도 해 주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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