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찬 이규봉 Mar 02. 2016

크라이스트쳐어치와 쿡 산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④] 12년 만의 앞집 할머니와 해후

2월 20일이다. 9시에 공항에 가는 첫 버스가 있는 줄 알고 일찌감치 갔더니 이미 버스는 와 있었다. 요금은 1인당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인 12달러로 채 20분도 안 걸리는 곳에 가는 정기운항 버스 치고는 너무 비싸다. 공항 수속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출발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다. 오랜만에 와이파이 통신을 했다. 공항인지라 속도가 빨랐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고 한 시간 만에 크라이스트쳐어치에 도착했다. 12년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나오는데 한국사람 같아 아내가 말을 건네니 안양대 교수라고 한다. 말을 나누다 보니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신학과 교수와도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참 좁은 세상이지!     


스마트폰에 저장한 면허증 덕을 보다     

렌터카 수속 밟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국제운전면허증만  가져오고 내 운전면허증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차를 빌리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던 차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그것을 보여주었더니 메일로 보내라 하는데 잘 사용해 보지 않아 메일이 가질 않는다. 옆에 있던 젊은이가 보자 하더니 화면을 복사기로 복사해 잘 나오니까 되었다고 한다.      

운전면허증 원본이 있어야 하는 걸 왜 깜빡 잊었을까? 기본 상식인데. 국제면허증이 있어도 반드시 필요한 걸. 나이 들어 관심이 무뎌진 건가? 다음은 보험 추가다. 처음엔 2500달러까지 배상하는 기본만 갖고도 충분하다 생각되었는데 결국은 하루 20불씩 추가하여 완전 면책을 받았다. 물론 어떠한 사고로부터든지 마음 편하려고 한 것이지만 결국 차를 되 돌려줄 때까지 아무런 사고도 없어 보험금 80달러만 기부한 꼴이 되었다.      

모든 수속이 다 끝나고는 20분 후에 자동차 열쇠를 받으러 오라고 한다. 그때 갔더니 좀 더 기다리라더니 30분이 지나서야 달랑 열쇠를 준다. 12시에 빌리기로 예약한 차를 한 시에 주고는 계약서에는 그대로 12시로 적혀있다. 주차장에 가니 아무도 없다. 내 스스로 많은 차 중 번호판을 보고 내게 할당된 차를 찾았다. 게다가 자동차 열쇠가 잘 빠지지 않는다. 시동을 끄고 내릴 때는 거의 열쇠를 빼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했다. 차의 마일리지를 보니 18만 킬로미터가 넘었다. 하루 10달러인 내비게이션도 아주 구닥다리이다. 아쉬운 대로 잘 사용하긴 했지만 싸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할 일은 아니다.      


아직도 복구 안 된 크라이스트쳐어치 지진 피해     

내비게이션 덕에 숙소는 아주 쉽게 찾았다. 도시 중앙광장(City Central Square)에 가보니 지진의 잔해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옛날 좋았던 모습은 다 사라졌다. 캔터베리 대성당도 무너지고 상가도 다 무너졌다. 주변에는 12년 전에는 보지도 못 했던 고층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 있다. 지진의 영향으로 이곳에 살던 한국 사람들도 많이 떠났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어렵게 구입한 성당도 완전히 무너져 인근 성당에 다시 더불어 살고 있다고 한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의 상징 켄터베리 대성당
아직도 그대로인 지진 피해 건물. 옆에 한글이 적힌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상가인 것 같다.

성당 주변의 정겹고 활발했던 정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곳에 있던 관광안내센터도 이전해 물어물어 찾아가 내일 갈 테카포 호수(Lake Tekapo)와 쿡 산의 인근 마을인 트와이젤(twizel)에 2박을 예약했다.     


12년 만에 만난 앞집 할머니     

12년 전 살았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아내가 주소를 기억하고 있어 쉽게 찾았다. 이곳에 와보니 비로소 옛 기억이 난다. 혹시나 하고 아내가 우리와 벽이 붙어있던 앞집 문을 두들겼다. 친하게 지냈던 키위 할머니가 아직도 여기 살고 계신가 해서이다. 문을 열고 한 분이 나오는데 12년 전과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의 이사벨 할머니다. 둘 사이에 뜨거운 상봉이 이루어졌다. 올해가 89세란다. 그러니 우리가 있을 때가 77세였나 보다.      

아직도 운전하며 다니고 있고 뜨개질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 뜨개질 해 만들어 놓은 옷거리와 정성껏 담은 소스 한 병을 아내에게 준다. 지진 때 집이 피해를 받았으나 다시 리모델링하여 깨끗해졌다. 내부 살림도 옛 모습 그대로다. 2남 2녀인데 한 아들이 24세 때 교통사고로 죽어 그 사진을 아직도 보고 계신다. 우리가 살던 집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졌다. 그 맛있던 복숭아가 생각난다. 우리 집을  승계받아 온 사람도 이곳에 연구년으로 온 교수와 그 가족인데 할머니완 별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천국에서나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나왔다.

12년 만에 만나 해후하는 이사벨 할머니와 아내

예전 그 맛있는 피자가 생각나 리틀톤(Lyttleton)의 사쯔모(Satchmo) 피자집을 찾아갔으나 상호명은 Root로 바뀌었고 3월부터 다시 개장한다 해서 아쉽게 돌아와야 했다. 사츠모는 철의 입술이란 뜻으로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루이 암스트롱의 별명이다. 유독 그 가게에는 그의 사진이 많이 걸려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다음 날 일찍 전망이 좋아 집값이 비싼 썸너(Sumner)로 갔다. 피해가 심했다는 말과 달리 지진 피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복구한 건가? 썸너에서 길게 바라보이는 해안에 다시 갔다. 이곳에 지어진 도서관은 다행히 지진 피해가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공부가 될까? 그 앞에는 낚시광들을 위한 방죽(pier)이 길게 바다로 나 있는데 지금은 게 철인가 보다. 어망에다 닭고기를 넣고 잡는데 어망을 올리니 작은 게들이 올망졸망 들어있다.

해안가에 세워진 뉴 브라이튼 도서관

냉동하지 않은 연어의 맛     

10시 반쯤 숙소를 떠나 중간에 한국 마트에 들려 장을 조금 봤다. 오늘 연어회를 먹으려면 초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시간 걸려 테카포 호수에 도착했다. 맑은 옥색의 호수 물빛과 교회 그리고 개 동상은 그대로인데 뭔가 번잡하다. 관광객이 많고 특히 중국인들이 많다. 설 명절 연휴가 아직 끝나지 않은가 보다. 예전과 다른 점은 많은 중국인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소유주가 중국인이지 키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모텔이고 상가고 손님을 상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시안이다.     

호수 주변은 왜 그리 많이 파헤쳐놨는지 볼썽사납다. 예전에 사진 찍었던 한 그루의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의 감격은 사라지고 다시 찾아올 이유가 없는 곳이 되었다. 이래서 아름다운 추억은 간직하고 있을 뿐 다시 찾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가 보다. 교회에는 예전에 적히지 않은 실내에서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표시가 있다.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이란다. 왜 사진을 찍는 것이 성스러움에 반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교회는 교파를 초월해 미사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부에서 보는 호수의 모습은 절경 중의 절경이다. 교회 옆에는 개 동상이 있다. 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개의 도움이 꼭 필요하겠지.

테카포 호수. 오른쪽 끝에 있는 건물이 그 유명한 교회이다.

연어 농장을  찾아갔으나 입구가 폐쇄되었다. 푸카키 호수(Lake Pukaki)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 농장을 찾았으나 매장은 푸카키 호수 안내센터에 있다고 한다. 트와이젤로 가는 도로에 푸카키 호수의 멋진 픙광을 등지고 안내센터가 있다. 그 안에 들어가니 단출한 연어 매장이 있다. 이미 회감으로 썰어 놓았다. 예전에는 연어를 통째로 살 수 있어 회는 떠먹고 나머지는 매운탕을 끓였는데 이제는 연어 살만 따로 판다. 회로 먹을 수 있는 싱싱한 연어는 500그램에 30달러이다. 우리 같으면 당연히 끼워 줄 젓가락이나 간장, 고추냉이를 30센트에 따로 판다. 

500그램 어치의 싱싱한 연어 회

하루 90달러의 백패커스는 커다란 창이 있어 햇빛을 많이 받았다. 싱싱한 연어 회의 맛은 참 좋았으나 500그램은 둘이 먹기에는 좀 많은 양이었다. 타운센터는 바로 숙소 옆에 있어 편리했다. 샤워 꼭지에 온수 조절기가 달렸는데 강약 조절이 안 되고 너무 수압이 센 것이 좀 불편하다고 할까. 바로 앞에는 교회가 있는 데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 그리고 침례교회가 함께 사용한다. 물론 신자수가 적어서이겠지만 얼마나 평화스러운가? 한국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교회도 가톨릭, 영국 성공회 그리고 장로교회가 함께 사용한다.

다음 날 아침은 날이 흐렸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아오라키의 정상이나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우려를 지닌 채 쿡 산을 향해 떠났다. 한 시간 정도 푸카키 호수를 따라 올라갔다. 그새 하늘은 바뀌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로 변했다. 마치 다시 온  우리를 환영하듯 아오라키가 맨 살을 그대로 들어냈다. 최고 정상의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흔치 않은데.

키아에서 본 빙하와 쿡 산 정상

캠핑장에서 10시 반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은퇴를 함직한 나이 든 사람들도 많이 있다. 12년 전에 와서 가지 못 했던 코스인 키아(Kea Point)로 우선 갔다. 2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이곳에서 3724미터나 되는 정상과 빙하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다시 내려와 1250미터 높이에 있는 샐리 탄(sealy tarns Track)까지 등반을 했다. 경사가 매우 심해서 올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를수록 빙하와 정상을 더욱 자세히 조망할 수 있었다. 

샐리 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샐리 탄 정상에서 싸간 점심을 먹고 한참을 보낸 뒤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더구나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왕복 시간은 3시간 정도였다. <끝>

작가의 이전글 폭우 속의 3박 4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