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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 이규봉 Feb 24. 2021

단독주택 우송재에 살며(1)

단독주택 입주기

2018년 2월 28일 둔산 목련아파트를 떠나 유성 호반베르디움 아파트로 이사했다. 22년 만의 이사였다. 그 사이에 목련에서 두 아들을 다 키워 대학을 보냈고 아이들 모두 번듯한 직업을 얻었다. 큰애는 결혼도 하였고 막내는 결혼할 날짜를 잡은 상태였다. 목련에 살면서 우리는 하고자 한 일은 모두 다 훌륭히 성취하여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며느리까지 모두 원해서 당시로는 제값을 받고 아파트를 팔았다. 그러나 바로 집을 사지 않고 무주택으로 있으면서 아파트를 분양받으려 했던 것이 일생일대의 아주 큰 실수이자 잘 된 결정이었다. 이 결정으로 우리는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초래했다. 내가 잃은 것이 아니라 무주택 2년 사이에 아파트의 가격은 두 배가 되었다. 내가 판 가격으로는 변두리 아파트도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나는 평생 꿈꾸던 단독주택에 살게 되었다.

   다음 해 6월 10일 월요일.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는 실상을 깨닫게 되었다. 도저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전세 계약이 끝난 후 다시 아파트를 산다면 목련에 비해 형편없는 지역의 더 작은 아파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엄청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이사 가자 하더니 이런 꼴을 당했다고. 그러나 최종 결정은 내가 내렸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모두 내 탓이지!

   해결책을 찾았다. 아파트는 더 이상 답이 아닌 것 같았다. 둔산 목련 42평 대신 변두리 30평대 아파트로 간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이며 문제는 이 고통이 평생 따라다니며 정신적 불안을 줄 것 같았다. 해결책은 단독주택을 찾아보는 것이다. 아파트 판 가격 정도로 살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아내도 동의했다. 예전부터 알아보았던 주택단지를 1주일 동안 돌아다녔다. 다행히도 주택 가격은 안정세로 예전과 큰 변화가 없었다. 그중 적당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정남향의 작은 마당이 딸린 16년 된 2층 목조주택이다. 비교적 작은 대지와 건평으로 우리 둘이 살기에 적당했다. 내부가 다른 집과 달리 특징이 있었다. 복층으로 되어 거실의 층고가 높아 작은 음악회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적당했다. 거기에 벽난로까지 있었다. 주방에 딸린 식당은 아내의 서재로 사용하기에 충분했고 예쁜 공간으로 아내의 눈에 쏙 들어왔다. 1층에 방 한 칸, 2층에 방 세 칸이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아파트를 팔은 가격에 1500만 원만 보태면 되었다. 이 정도면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 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예전에는 우리 아파트보다 5천 정도는 더 주어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과 며칠 전 전세계약을 새로 맺은 것이다. 그 의미는 많으면 2년을 기다려야 입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6월 15일 금요일. 주택 매입 계약을 했고 9월 20일 잔금을 치러 등기를 받았다. 무주택 1년 6개월 만에 내 집이 다시 생긴 것이다. 그것도 바라던 단독주택!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지만 않았어도 사기 어려웠을 것이고, 기존 아파트를 팔고 다시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현 시세로 볼 때 목련아파트가 이 집보다 비싸도 나는 이 주택을 목련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아 웃돈을 주어도 바꾸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가격 폭등으로 인한 심적 고통은 점차 완화되어 주택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로 본다. 나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으나 아내는 가기 싫었던 주택으로 이사를 가야 하니 마음고생이 참으로 심했을 것 같다. 

   2019년 12월 세입자가 계약 만료 전인 8월 말에 이사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근처에 주택을 구입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도 일찍 입주할 수 있게 되었다. 5월부터 인테리어 업자를 찾아보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해 줄 수 있는 업자를 어떻게 찾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다섯 업체와 연결이 되었다. 하나는 인터넷으로 한샘과 집닥을 통해 각 한 업체씩 소개받았다. 우연히 노은동 주변을 돌다 집 근처에 있는 업체를 발견해 우선 세 업체에게 견적을 부탁했다. 집을 보며 상담하는 중에 생각도 안 한 새시를 모두 교체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LG 대리점을 찾았더니 거기서 한 업체를 또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모두 네 업체에 의뢰했다. 그런데 앞집에 사는 분이 괜찮은 곳이 있다며 성당 교우이자 바로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업자를 소개해 주어 모두 다섯 업체가 견적을 내었다. 처음에는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하려 했는데 점차 범위가 넓어졌다.

   가장 싸게 해 주는 곳에 맡기려고 했던 초기의 마음은 사라졌다. 이왕 하는 거 마음에 들도록 예쁘게 해 줄 수 있는 곳을 택하게 되었다. 모든 선택을 아내에게 맡겼다. 마음에 없는 주택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인테리어만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게 하고 싶어서다. 결국 가장 비싸게 견적을 낸 마지막에 본 업체와 하기로 했다. 여기 대표는 성당 교우이며 여자분이라 아내와 소통이 잘 될 것 같았다. 4천을 예상했던 리모델링 비용이 세 배로 치솟았다. (계속)

구입할 당시의 집과 입주 전 가지치기한 후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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