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나는 친가 조부모님이 안 계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면 그것은 외가 조부모님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표를 받으면 반드시 어머니는 근처 외갓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성적표를 보여드리면 할아버지는 덕담과 용돈을, 그리고 할머니는 먹을 것을 주셨다. 외할아버지는 국화를 너무 좋아해 가을이면 손수 키운 국화 화분이 마당에 늘 가득했다. 외할머니는 말씀이 별로 없으셨지만 매우 온화하셨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두 아들은 할머니의 사랑을 흠뻑 받았으나 할아버지의 손길은 느껴보지도 못했다. 두 아들이 모두 결혼해 두 명의 손자와 한 명의 손녀가 생겼다. 내가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나나 아들들은 할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느낌도 가져보지 못했기에 우리 손주들에게만큼은 할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예전과 달리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고 각자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데다 자본을 중시하는 사회의 발전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쁜 생활을 영유하고 있다. 그러기에 할아버지와 손주들 간의 접촉은 상대적으로 점차 어려워져 조손 간에 가까이 보며 자주 소통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아이들이 커서 2학년이 되면 방학 때마다 손주를 집으로 불러 잠깐이나마 함께 지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의 생각과 지식을 손주에게 전할 수 있고, 조손 간에 정을 쌓을 기회가 되고, 또한 며느리도 잠시 육아로부터 쉬게 되어 두루 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지식에 관한 오지랖이 넓었다. 퇴임에 앞서 마음을 다졌다. “이제는 남을 가르치는 어떠한 일에도 나서지 말자.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 요청하면 가능한 조건 없이 하자.” 내가 나서서 뭔가 하려고 하면 조금이라도 구차한 일을 남에게 부탁할 처지가 되기에 앞으로는 그러한 마음조차 갖고 싶지 않아서이고, 아울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조건도 없이 나누고 싶었다. 그동안 쌓아 온 지식과 생각을 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그 첫 단추가 자라나는 손주들이다. 그래서 손주와 함께하는 방학 캠프를 만들게 되었다.
첫 손주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말귀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이고 부모와도 떨어질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내외도 동의하고 손주도 학원 가는 대신 혼자 와서 있겠다고 한다. 그래서 2주 동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여름 캠프를 우리 집에서 열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으로 2층이다.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손주와 함께 살기에 참으로 좋다. 이것을 시작으로 다른 손주들도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방학 때마다 캠프를 가질 계획이다. 캠프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손주들마다 매년 두 번씩 최대 10번의 나눔을 가질 수 있다.
학습과 활동
초등학교가 방학을 하면서 캠프는 시작되었다. 학습과 활동은 7월 29일 월요일부터 8월 9일 금요일까지 2주간이다. 학습은 평일 나흘간 오전에 45분씩 세 교시가 진행되고, 평일 오후와 주말에는 할머니도 함께하는 야외활동이 있다. 저녁에는 잠들기까지 주로 할머니와 함께 보내며 책도 읽어주고 놀이도 같이한다. 이 글에서는 주로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학습에 대해서만 말한다.
학습은 음악과 한문이다. 음악과 한문은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음악은 살면서 늘 주변에 있고 항상 함께하며 아이들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문은 글자 자체를 외우고 익히는 것보다는 문맥에 담긴 그 뜻을 어려서부터 익혀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리고 형제간에 화목함을 이루는 데 목적이 있다.
음악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초적인 박자와 음계에 관한 이해와 실습이다. 첫 시간에 박자에 대해 학습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음계에 대해서 학습한다. 박자는 4분음표를 중심으로 2분음표, 온음표, 8분음표, 16분음표, 점음표 그리고 쉼표를 이해하게 한 다음, 네 박자 안에 다양하게 섞인 음표와 쉼표를 보고 박자를 구별하며, 이에 따라 박자를 두드릴 수 있게 실습한다. 음계는 7음계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구별할 줄 알고 또한 악보에 표시할 수 있으며 악보를 보고 노래하고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게 한다. 음악에 대한 주 학습 도구는 두드릴 수 있는 카혼과 음을 낼 수 있는 피아노이다. 보조 도구로 악보 프로그램인 피날레와 기타를 사용한다.
한문은 『사자소학』에서 부모와 형제간의 도리에 대한 구절을 골랐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관한 전통적인 생각을 담은 문구로 ‘父生我身 母鞠我身(부생아신 모국아신)’과 ‘一欺父母 其罪如山(일기부모 기죄여산)’을 택했으며, 형제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줄 ‘兄友弟恭 不敢怨怒(형우제공 불감원노)’와 ‘一杯之水 必分而飮(일배지수 필분이음)’을 뽑았다. 하루에 4자씩 읽고 그 훈과 뜻을 이해하며 한자를 직접 외워서 쓸 수 있게 한다. 그다음 시간에는 앞서 배운 문구와 짝을 이루어 함께 문장을 쓰고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고 부모와 형제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였다.
오전에 학습이 끝나면 오후에는 다양한 과외활동을 함께 했다. 물놀이, 산책, 연극, 뮤지컬, 그리고 과학관, 박물관, 천문대, 곤충관 등을 방문하고, 각 기관에서 진행하는 다수의 적당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저녁 이후는 자유롭게 보내게 한다.
시작에 앞서 아이가 잘 따라와 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분명히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게 만들어야 하니 유인책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첫 번째가 갖고 싶은 것을 상품으로 주는 것이다. 물어보니 닌텐도 게임기의 ‘루이스 맨션2’라는 칩을 갖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매일 학습을 평가하여 2주간의 평균점수가 90점 이상이 되면 캠프가 끝나는 날 주겠다고 했다. 두 번째는 게임 시간 조절이다. 아이가 너무도 게임에 빠져 있다. 게임 시간은 하루에 3시간을 넘지 않기로 정하고 저녁 8시 전까지만 게임을 할 수 있으며 이후에는 할머니와 함께 책을 읽기로 했다. 게임을 할 때는 반드시 시작한 시간과 끝난 시간을 스스로 적어 합이 3시간을 넘지 못하게 했다. 예상대로 학습을 게을리하고 딴짓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갖고 싶어 하는 게임칩을 가질 수 없다거나 게임을 못 하게 하는 방법으로 약간의 위협을 했는데 이 방법이 그런대로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