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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비 Oct 27. 2020

친구여, 친구여?

망상 노트.


 초, 중, 고 동창생이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그 시절에는 집도 가깝고, 학교는 물론 학원까지도 함께 다니던 사이라 꽤나 친했던 기억이다. 사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자랑도 할 법한데, 나는 쉽사리 그러질 못하겠다. 알고 지내던 시간 이상으로 모르는 사람으로 지냈으니까...     


 두 사람은 성격도 외모도 참 달랐다. 지금 현직 배우를 하고 있으니 작은 얼굴과 수려한 외모, 보기 좋은 비율이 어련했을까. 학창 시절에도 얼굴값은 톡톡히 하고 다니면서 성격도 털털하고 성적도 우수했다. 그에 비해 나는 덩치만 큰, 뭐든 중간에서 조금 부족한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 시절 친구 관계라는 게 딱히 기준과 우열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지금에서야 굳이 비유하자면, 크고 반짝거리는 유리구슬과 이가 빠지고 잔뜩 생채기가 난 플라스틱 구슬이 한 주머니에서 어울리는 꼴이랄까.      


 처음 그 친구를 매체에서 접했을 땐 너무나 놀랐다. 사실, 그 친구가 배우의 꿈을 가졌다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 (공부를 잘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의심도 하지 않았지.) 배우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나 역시 동종 업계를 꿈꾸며 버둥거리던 터라 신인으로 치열하게 현장에서 활약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묘한 고양감과 함께 언젠가 같은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글거리는 희망에 부풀기도 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신인에서 조연을 거쳐 주연으로 성장하는 그와 다르게. 나는 현장은커녕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둑한 곳을 배회할 뿐이었다. 거대 자본이 투자된 영화(결국 대박을 쳤고 매스컴에서 한동안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에 출연한 그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열등감과 질투에 밤잠을 설쳤고, 이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질투의 대상이었다. 실검에 오르내리는 그 이름을 애써 못 본 척하기 바빴고, 우연히 링크에 걸린 기사를 볼 때면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기 바빴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딱히 원인을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자괴감을 되새김질할 뿐이었다.      


 한 번은 그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 B와 식사를 하던 중에 예상치 못하게 그 이름을 듣게 되었다. 친분의 지분을 계산하자면 B와 그는, 나와 그의 관계를 기준으로 10% 미만의 관계. 굳이 언급할 만큼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B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당황한 나는 재빠르게 얼버무릴 지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멘트가 내 뒤통수를 쳤다.     


 ‘야. 걔 봤어? 와 잘돼서 나까지 기분 좋더라!’     


 그건 오히려 내가 했어야 하는 생각이고, 내가 느꼈어야 하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고 기뻐했던 순간은 처음 그의 존재를 TV에서 봤을 때 그 한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과거의 10년을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던 사람은, 어느 순간 만남을 상상만 해도 숨 막히고 어려운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어린 시절의 친밀도만큼, 부모님도 그의 존재를 잘 아는 터라 뉴스나 시상식에서 본 그의 목격담(?)을 종종 전해 듣곤 한다. 나는 여전히 어설프게 그 이름을 빨리 흘려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여전히 그 이름을 듣고 그의 얼굴을 본다는 게 마냥 편한 일은 아니다. 내가 질투한다고 해서 그가 겪었을 고충이나 마주했을 현실을 무시하진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지금 그 속에 있기에 지금 그의 성취가 얼마나 고되고 험난했을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만큼 그를 질투하는 나의 편협함도, 조급함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언젠가 그를 마주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지도 못하고, 그의 성취가 굳이 내가 기준하는 것과 다르다며 다른 사람에 비해 헐값을 매기곤 한다. (이 지점만큼은 냉정하게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 는 편협함.) 현장은 고사하고, 언젠가 우연히라도 그를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심지어, 뭐라고 불러야 할지...     


 삶은 매섭게 흘러갔고, 누구도(적어도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관계는 거기에 닿아 예리하게 잘려 나갔다. 이 이야기는 아직 종장을 맞이하지 않았지만, 아직 내가 다 보지 못한 끝에 잘려 나가지 않는 지점이 닿아있기를...


 내가 다시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미약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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