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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비 Oct 27. 2020

나를 붙잡지 마세요.

망상 노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분명히 과거에 산이었을 자리를 깎아 만든 주택가에 있다. 감사하게도 산 중턱 이전에 위치한 곳이라 드나듦에 딱히 부담 없는 경사. 그리고 그 경사의 끝 지점에 반경 100m의 거주자들을 먹여 살리는, 젖줄과도 같은 편의점이 있다. 나 역시도 대부분의 영양분을 조달하는 곳인데...     


  그곳에, 수문장이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상과 통통과 뚱뚱의 경계를 저울질하는 풍채 그리고, 언젠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광고에서 봤던 자폐아의 표정을 가진 여성. 철통 같은 경계근무는 아니지만, 수문장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나타나 편의점 입구에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을 관찰하곤 했다.     

 

 대부분은 무시한다는 인상으로 보내주었지만, 의심 가는(?) 대상에겐 거침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던지며 길을 막았다. 어디 말뿐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서 억지로 손에 쥐어주려고 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떤 기준이나 규칙도 없이, 편의점을 드나드는 그 많은 아무개 중에서 누군가는 그녀의 심문을 받았고, 그 대상은 도덕적으로 좋지 못한 예시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그녀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피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 그녀의 존재를 인식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자리를 지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그녀의 심문을 거쳐야 했다.     


 한 때는 편견 없이 순수하다고 믿었지만, 사실 누구보다 진한 순도를 가진 속물.  바로 나.    


 나 역시 대다수의 아무개처럼 최대한 그녀를 무시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편의점 안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추격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행동을 하고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경이 쓰여, 어느 정도 안전거리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슬쩍 뒤를 돌아보면 감정을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는 내가 편의점을 떠날 때까지 되려 나를 무시하곤 한다.     


 그리고 매번의 만남은 위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놓치지 않고 나를 막아서는 그녀를 나 역시 잡히지 않고 돌아서면서, 항상 같은 번뇌에 휩싸이곤 한다.      

 ‘너무 매몰차게 돌아섰나?’

 ‘대화를 받아줬어야 했나?’ 

 ‘혹시 나를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인가?’

 ‘집이 근처인 건가?’

 ‘보호자는 없는 건가?’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언제까지 저기 있을 거지?’

 ‘저렇게 다니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

 .

 .     

 

 번뇌의 끝은 언제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책감이었다. 장애를 고사하고라도 낯선 이의 접근은 꺼리는 편인데, 어쭙잖은 마음으로 동정도 선의도 아닌 허울 같은 도덕성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후에는 그런 감정이 싫어서 더 매몰차게 무시했고, 더 냉정하게 도망쳤다. 안전거리 밖에서 살피는 짓도 더는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도, 미쳐서도 안 되는 철저한 타인이었고, 나 또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자 했다. 실로 그러했다.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모습을 볼 수 없던 기간이 있었다. 


 번뇌 같은 건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지내던 중, 곳간이 가득 찼던 탓에 편의점을 들르지 않고 지나치면서 문 쪽이 아닌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뭐랄까. 정말 뜬금없는 호기심이 생겼다. 대화의 내용은 당연히 들리지 않았지만,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도저히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쭈뼛거리며 유리 벽에서 거리를 두고 흡연을 핑계로 멈춰 서서, 대화하는 그녀와 정체불명의 상대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녀의 흐릿한 표정과 목적 없는 시선은 여전했지만, 나는 그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차분하고 편안하게 보였다. 상대 또한 내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미소와 편안한 기운으로 그녀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담배는 진즉에 다 타버렸지만, 그 장면을 조금 더 서서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다가 정신 이 번쩍 들어 재빠르게 손을 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대화하던 상대가 지인인지, 가족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래 왔듯 수많은 아무개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체 무슨 감정인지 조금도 분간할 수 없지만, 한동안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가슴 어딘가를 따듯하게 했고, 안도했다.

 .

 .

 .     

 

 그 이후로, 나는 몇 차례 편의점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또 매번 치르던 과정을 반복했다.     

 

 번뇌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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