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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명국 May 10. 2018

블루투스 배터리 앱 기획을 경험해 보았다 (2)

19층에 혼자있다.........

Previously... 앱 기획을 경험해 보았다(1)

신규 사업 '어플 기획'을 담당하게 된 4년차 기획자가 개발/기획자의 시점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나 동의를 구할 능력이 못되어 결국 실질적인 어플 기획/개발 단계로 접어드는데........


Bluetooth Battery Check


[해맑게 웃는 배터리소년]


왜 갑자기 뜬금없는 블루투스냐고?


신규 사업 '어플 개발'로 선정된 아이디어가 다름아닌 '안드로이드 휴대폰에 연결된 블루투스 기기의 배터리 잔량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안드로이드 휴대폰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연결 블루투스 기기의 배터리 체크라는 핵심 기능을 바탕으로 기존 제품들의 제공 기능을 분석하고 그 기능들 중 우리 제품에 탑재할 부가 기능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 2명의 개발자와 1명의 기획자가 해결해야 할 첫 미션이었다.


1부에서 나열한 모든 과정은 결국 이 어플을 개발하는데 소요되는 고민과 선택의 과정을 통해 조금 더 완성도있게, 목표에 부합되는 결과물을 차질없이, 개발/기획이 같은 목표를 갖고 롤의 분리가 아닌 통합의 과정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풀어 얘기하자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앱을 만들어보아요' 정신으로 앱 개발을 후딱 해버리자는거. 이 상황에서 앱 기획/개발의 실질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까다로운 문서작업



야매로 기획일을 익힌 탓에 정형화된 문서 작업보다는 그때 그때 필요한 문서 형식을 택해 문서작업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기획자용 내부 공유 문서는 기획자가 작성하기 쉽고 알아보기 쉽게 만들고 개발자용 공유 문서는 개발자의 의견을 수용해서 개발자에게 맞는 문서를 작성해온 것.


신규 사업 특성 상 한 문서를 기획/개발/디자인 및 기타 관련 업무 파트에 공유해야 하니 문서 형식을 좀 더 호환성있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는데...... 여기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특히 앱의 개념을 설정하는 친 기획자적 문서를 변형시켜 친 개발자적인 호환성을 확보하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했으나 결국은 실패.


여기서 얻은 노하우는 '문서로 안되면 말로하자'라는, 만고 불변의 진리다.


일단 userstory, 즉 사용자가 원하는 니즈를 나열하고 그에 대해 어플이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을 매칭시키는 전형적인 기획자 문서를 작성했다.


[중간 중간 이모티콘이라도 넣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사실 친 기획자건 뭐건간에 관심이 없다면 단 한줄도 읽기 싫은 텍스트의 나열이다. 하지만 유저스토리 문서의 특성 상 한 장의 문서로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요청사항의 필요성, 사용자의 니즈 충족, 고려해야 할 사항 등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효율적인 문서 형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제 이 문서를 개발자 및 디자이너분들이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는, 정확한 요청사항만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로 번역해보자.


[전체 기능 나열]


아직도 길다...줄여보자


[불필요한 기능 제거]


여전히 많다. 더 줄여보자.


[핵심 및 부가 기능 도출]

불필요한 기능 추가의 이유 등을 모두 빼고 핵심 및 추가기능의 종류와 앱 사용 flow에 따른 기능 연결이 마인드맵 문서로 최대한 간략하게 도출되었다.


결국 하나의 문서로 기획/개발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포기.


차라리 1차로 기획자용 풀 스토리 문서를 작성하고 그걸 재단해서 개발자 공유용 문서를 만드는 흐름을 택했다. 농담이 아니고 포기하니까 다른 방법을 자연스레 찾게 되더라.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개발파트가 굳이 지금 단계에서 기획의 업무 일부를 함께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1개월 여 이상의 기간동안 사업성을 확인하고 기존 출시 제품들을 분석했으니 개발팀 입장에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기획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면 열심히 개발할 준비가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계속 기획자 하나가, 그것도 수년동안 같이 일하고 술마시고 게임하는 철없는 기획자 하나가 계속해서 걱정만 하고 있으니, 당연히 개발파트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했을거다. 천만 다행인 것은 함께 일하는 개발자들이  내 걱정의 이유가 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자는 의도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준 대인배 개발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쓰고나니 내자랑같지만 절대 아니다. 내 능력 부족이 걱정의 원인이기도 했다)


이건 전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고, 공치사하는것도 아니고, 맛있는 오마카세 안주를 바라고 하는 말도 아니다.


실제 기획/개발 단계에 접어들고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전에 없던 의견 제시, 반박, 논의, 합의가 물흐르듯이 이어졌고 기획회의 직후 곧바로 제기한 예외 상황에 대한 답변과 기능 개발 요청 등 제반 업무가 막힘없이 풀리는 기적을 경험했다.


기획업무를 담당해본 분들은 알테지만, 개발 요청에 대한 가능 여부 검토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게 진행될 수 없는 성격의 업무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요청사항이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니 오히려 기획업무,가이드라인 작성이 개발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물론 1개월 이상의 기간에 걸쳐 어플의 목표와 앱 사용 예상 flow, 그리고 업무에 대한 방향의 이해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된 것이 이러한 기 현상의 원인이겠지만 기획자 입장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던 경험이었다.


어플의 기능이 순식간에 구현되고, 슬슬 디자인팀의 참여가 필요한 개발 중반 단계에 이르게 되었으니


내 몬스터헌터 랭크가 100을 돌파한 3월 말의 시점이었다.

[요염한 자태의 흔들흔들 뚜껑]


[아무리 피곤해도 몬스터는 잡고 잤다]





내 미적 감각의 미천함을 깨달았다

좌측의 초록 어머니회스러운 앱 디자인은 기획 초반에 파워목업(파워목업 실행기)를 이용해 내심 뿌듯해하면서 만든 기획 문서 내 앱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디자인팀의 손길을 거쳐 우측과 같은 쌔끈한 앱 디자인 (배터리 잔량 캐릭터의 귀여움을 보라)과 힘찬 모습의 배터리 아이콘까지 완성되니 실제 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현실로 다가왔다.


나 못지 않은 오덕력을 지닌 개발파트에서도 캐릭터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내 경우 지인들의 단체 카톡방에 배터리 앱 디자인을 도배하면서 '이쁘지 않냐'를 연발하는, 딸내미 자랑하는 아버지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마는데.....


디자인팀의 참여로 인해 개발 및 구체화는 더욱 가속화되었고 이제 남은것은 지원 언어 결정, 앱 홍보 등 타 부서와의 협업을 필요로 하는 업무와 앱 사용 가이드라는 기획+디자인 과제였다.




회사에는 숨겨진 능력자가 많더라


[고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몰한다]

마침 기존 업무 중 급히 처리해야 할 큼지막한 이슈가 한개도 아니고 두개가 동시에 터지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때마침 어플의 핵심 기능의 개발과 1차 디자인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음 진행 상황에 대한 일정과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기였던지라 오전에는 터진 이슈 처리, 오후에는 어플 일정 계획 수립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업무에 몰입하다 보니 두 업무 모두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능력이 출중한 기획자라면야 사고 모드의 전환이 순조롭겠으나 내 경우엔 전환이 쉽지 않더라. 게다가 두 업무 성격 상 나름대로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딱 그 시점의 업무 진행 상황이라 온갖 생각이 머리속 가득찬 상태로 문서작업이 진행. 결국 배터리 앱 기획 수정문서에 긴급 이슈 내용을 붙여넣고 엔진 담당자한테 어플 개발 일정을 묻는 등의 오만가지 실수를 거듭, 결정적으로 개인적인 고민거리까지 겹쳐지니 전에 없던 피로감과 짜증이 솟구쳤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진도는 안나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진도가 안나가니 다음 일정에 대한 문의가 지속적으로 도달하고, 결국 집중도 제대로 못하는 최악의 상황.


이때,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는데.......


다름 아닌 지원 언어 결정 상황. 원래는 영/한, 2개 언어만 지원하는 것으로 1차 기획안이 마무리되었는데 사우분들 중 영/중/일 3개 국어 각각 플루언트한 후리 토킹은 물론 고급 번역 실력을 갖춘 3인의 재야 인문학 고수께서 도움을 자처하고 나타나 주셨다. 결국 총 4개국어로 번역된 어플 출시가 가능해진 상황이었다. 그것도 외주가 아닌 내부의 도움으로.


개발부터 출시까지 내부 인력만으로 어찌 해보자는 신규 사업의 의도에 적극 부합하는, 천박하게 말하자면 최대한 돈 안들이는 신규 사업이 진행되게 된 것이다.


머리속이 꽉 차있는 상황에서 다시 막힌 변기 뚫리듯 의외의 도움을 받음과 동시에 힐링 포션 처음처럼을 2주 간 매일 복용한 결과 짜증과 피로감이 눈녹듯 사라졌다. 아니, 힐링 포션을 단순히 복용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벽 2시까지 신나게 먹고 마셔도 다음날 숙취없는 신세계도 경험했으니......


이렇게 까불다가 주말 내내 몸져 누운 4월 중순의 시점이었다.





결국 앱이 곧 출시된다.



두서없는 이야기의 끝이 보인다.


어플 핵심 기능 및 부가 기능의 개발, 디자인 작업 완료, 3개국어 번역 완료, 앱의 스토어 등록 제반 사항 마무리, 홍보 (이 역시 내부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고, 예정업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계신다.)일정까지 거의 마무리가 되고 있고 최대 1주일 내에 어플이 출시되는 시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실, 어플 자체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블루투스 기기의 배터리 정보는 iOS에서는 플랫폼 자체에서 지원하고 있고 안드로이드도 8.0버전 이후에는 블루투스 관련 기능이 이미 탑재되어 있으며(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부 기기에서는 벌써 블루투스 관련 설정 옵션이 추가된 것도 있다. 즉, 기획 단계에서 어플의 핵심기능중 하나로 꼽았던 배터리 잔량 체크 기능은 곧 유명무실한 기능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블루투스 배터리 체크 등의 핵심 기능이 사용자의 주목을 끌 수 있는 매력적인 기능인가도 사실상 불확실하다. 특정 블루투스 기기의 전용 어플은 배터리 상황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기기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개발/기획파트의 공동 기획'이라는 목표가 나름의 결실을 맺어 유명무실해 질 수 있는 배터리 잔량 체크 기능 외에도 2개의 추가 핵심 기능 - 페어링 기기 변경, 기기 페어링 시 특정 앱 자동 실행 - 이 뒤를 받쳐주는 양상이 되었다.1개의 핵심기능으로는 사용자를 만족시키지 못할수 있다는 내부 논의를 거쳐 추가 핵심기능을 검토한 결과다.


겨우 4년차 기획자인 나 스스로 조차 이전의 잡다한 이력 (기획자 이외의 업무 경험)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상황에 부딪혔고 고민도 하고 여러 곳에 문의도 하는 등 전에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연락끊은지 5년 넘은 전 직장동료한테 뜬금없이 연락하는 등의 만행도 저질렀으니.....)


앞으로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동일한 개발/기획/디자인 담당자들이 다시 팀을 꾸려 업무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동일한 상황, 즉 차곡 차곡 일이 진행되는 상황이 발생하리라 장담은 못한다.


그래도 뿌듯한건 사실이다. 모하비 사막 오후 2시의 모래처럼 바삭바삭 메말라가는 40대의 감정선이 여고생마냥 촉촉해져서 12시가 다되어가는 시간까지 자판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은것은 분명히 있다. 막 자랑하고 싶은 그런거. 우리가 이런걸 맹글었어요 하는 그런 뿌듯함.


훨씬 커다란 규모의 업무에 파묻혀만 지내다가 느끼는 신선함. 손에 잡힐듯한 업무 전반적인 사항의 논의과 고민과 검토.


혹시라도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될 개발/기획/디자인 분들도 이런 신선한 경험을 한번쯤은 해보길 기원한다.


몬스터헌터 수렵피리의 공방업 풀버프를 받은 그런 느낌을 여러분들도 느껴보시길.




앱 등록 그 후...


앱 등록 완료.


이 금 쪽같은 내새끼 블루투스 배터리 어플은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infraware.BluetoothBattery


에서 확인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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