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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명국 Jun 20. 2020

독산역 가볼만한 술집 (1)

중년 술꾼의 체지방 성장기

사무실이 독산역 근처로 이사한 지 햇수로 벌써 4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가산 디지털단지역 부근에서의 5년 여 주거생활까지 합친다면 근 9~10년을 IT단지에서 생활한 셈이다.


아늑한 분위기, 썸 타는 배경음악, 밝은 조명 따위는 저리 치우자. 30~40대를 넘나드는 시간 동안 주 3회 이상의 음주 라이프를 함께했던 싸고 맛있는 독산역 술집을 공개한다.


초점 없고 무성의한 사진은 음주 중 찍은 사진이니만큼 양해를 부탁드린다.



1. 동남집 (곰탕, 불고기, 곱창전골, 수육 등)

[단촐한 메뉴, 하지만 모두 맛있다]
[곱창 전골도 훌륭]

어린 시절, 황동 불판에 굽듯 끓이듯 조리한 불고기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은 매우 강렬하다. 흔히 말하는 단짠의 조화로움을 처음 경험한 그때, 입이 짧아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던 내가  난생처음 공깃밥을 싹싹 비워먹고 물 한 컵을 비워낸 기억이 선하다.


저렴한 가격, 4인이 불고기 3인분에 묵밥, 혹은 설렁탕 하나를 시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2시간 소주 10병 컷은 거뜬. 영업 종료시간이 비교적 짧은 반주 중심의 음식점이지만 짧고 굵은 1차를 원한다면 매우 추천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음식점이다.


주 메뉴가 곰탕이니만큼 곁가지로 나오는 무김치와 배추김치가 푹 익어 맛있고 공깃밥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음날 숙취가 비교적 적은 대신 포동포동 살이 찌는 육성형 술집.


저녁때 불고기 안주로 술 마시고 다음날 점심 곰탕으로 해장하고 다시 저녁때 곱창전골로 음주가 가능한 배리에이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2. 한길 국수 (전, 제육볶음, 야채두부, 스팸 계란 프라이 등)

[메뉴에 없는 돼지불백과 야채두부]

전형적인 선술집. 다양한 안주와 다양한 주종 (막걸리, 소주, 맥주, 기타), 다양하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한 음식 냄새로 가끔 웨이팅이 필요하기도 한 독산역 부근 인기 술집. 가성비로는 남바 원을 달리지만 특유의 시끄럽고 정신없는 선술집 분위기로 인해 상당한 스피드로 술을 마시게 되는 마성의 술집이다.


대부분의 안주가 맛있지만 메뉴에 없는 돼지 불백 (점심 식사 메뉴)과 야채두부의 조화는 나트륨 섭취 조절에 밸런스를 맞춰주기는 커녕 먹다 보면 술보다 안주에 탐닉하게 되는 묘한 상황을 발생시킨다.


평범한 파전과 부침가루 및 녹말가루를 넣은 감자전, 튀긴듯한 김치전은 호불호가 갈리니 주의. 특히 보쌈, 삼합 등 안주류의 다양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대부분의 안주 퀄리티가 평균 이상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3. 브라운치킨

[후라이드 + 마늘 한마리 반 세트]

치킨은 거기서 거기다. 맞는 말이다. 특히 체인점 치킨은 양념과 재료를 본사에서 받아쓰는 만큼 가게마다의 차이점을 딱히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1차에서 후줄근하게 마신 술을 따끈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로 마무리하는 상황에서는 맛보다 온도감이 중요하다. 후욱 후욱 달아오르는 소주의 기운을 기름진 닭과 양념, 그리고 머리가 찡해지도록 차가운 맥주로 몰아내는 만큼 가학적인 즐거움도 없다.


단, 한길국수 > 브라운치킨의 코스를 밟은 날 혹여 지하철이나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공공 질서를 위해 입을 벌리지 말자. 흡연자라고? 걸어서 귀가 혹은 마스크 착용이 필수.


4. 독산 고기집

[우리 집밥은 이렇지 않다..... 엄마 미안]

흔히들 말하는 함바집이다. 아, 함바집은 일제 강제 노동과 연관된 좋지 않은 단어이므로 현장식당이라고 해야겠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가산역 근처의 IT관련 시설공사와 함께 빌딩 숲 사이에서 보기 힘든 현장식당이 독산역에 존재한다.기사식당과 더불어 '최소한 실망하지 않는 음식솜씨'를 기대하게 만드는 현장식당은 눈에 띄기만 하면 한번씩 가보는 식당이다.


다양한 반찬, 존재감있는 메인 음식, 매일 바뀌는 국과 쌈, 빠지지 않는 나물 등 푸짐한 음식으로 반주하기 좋은 음식점이다. 특히 김치류가 상당히 맛있고 가지무침, 오이김치 등 '엄마 밥줘요'의 소환물로 받을 수 있는 전형적인 집반찬을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나같은 시골출신 상경 자취생에겐 대단한 매력이다.


1주일에 한두번은 8시 컷으로 제육볶음 + 고등어구이로 2+1 (소주2 + 맥주1)의 간단한 반주를 즐기고 귀가하기 좋은 음식점. 두셋이 실컷 마셔도 5만원 내외의 저렴한 가격에 밥까지 먹으니 2차를 가지 않는다는 장점마저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 건강을 책임져주는 웰빙형 음식점.


참고로, 한길 국수의 돼지 불백과 비교하면서 먹어보면 재미있다.


5. 우겹우겹

[오와 열을 맞춘 고기 장인의 배치 솜씨]

고기를 구울때 숯을 쓰느냐 철판을 쓰느냐의 문제는 조선시대 예송논쟁 및 우리집안은 대대로 양반집안이다 등의 이슈와 더불어 끊임없는 소란을 불러일으켜왔다.


밥을 볶을 수 있다는 장점을 취하고 고기 맛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끌어안은 철판형 고기집 중 최고의 가성비를 보여주는 독산역 고기잡은 단연코 우겹우겹이다.


빌트인으로 장착된 리필형 된장찌개는 한식의 세계화 방향을 제시하고 소갈비살, 삼겹살, 목살, 우삼겹 등의 고기 메뉴는 적절한 소/돼지의 메뉴 분배로 평등과 자유를 의미한다는게 말이 되냐.


김치, 부추, 고기를 철판에 구워먹는다는 네안데르탈인적 조리방식은 어지간하게 질 나쁜 고기가 아니라면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자극하는 매혹적인 섭식행태다. 게다가 볶음밥은 정식 메뉴에 없으니 공기밥 주문 후 보너스로 제공받는 블록형 버터와 김치, 콩나물 및 부추무침을 이용한 자력 갱생형 조리방식은 우리 모두 스스로 어린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팔팔 끓는 된장찌개에 공기밥을 넣고 안주삼아 먹는 국죽형 안주는 코로나 Era인 만큼 공용 수저 혹은 국자를 이용하여 떠먹도록 하자.


6. 장인족발

[때깔좀 보십시오 ]
[따사로운 느낌의 구이 족발. 만취상태라 초점이 없다]


독산역 부근의 족발 계보는 크게 장인족발론과 뽕나무쟁이족발론으로 나뉘어 논쟁해 왔다.


장인족발론 :

족발이란 무릇 양념이 진하지 않은 오소독스한 족발을 근본으로 하야 약간의 구운 맛을 가미한 구이 족발과 느끼함을 잡아줄 따끈한 콩나물국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갖가지 전과 쟁반 막국수로 마무리하는 기승전결이 없다면 안주로써의 족발 의무를 게을리하게 되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다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도 매운 족발 있음)



뽕나무쟁이론 :

매운 양념 족발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매운 겉절이, 매운 냉 콩나물국 등 삼위일체의 음식을 제공하는 뽕나무쟁이야말로 안주로서의 새시대를 여는 혁명적 안주가 아닌가? 구태의연하게 오소독스나 외쳐대는 수구 족발론은 퇴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근데 우리도 일반족발 잘나감 ㅎ)



몇년 전부터 유행해온 매운 족발은 그 특유의 인공적인 맛때문에 몇점 먹다보면 피곤해지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장인족발의 구이 족발은 직화에 살짝 그을린 특유의 향과 질감때문에 자주 찾게 되는 느낌.


물론 뽕나무쟁이 족발도 맛있고 푸짐하지만 사무실 건물 1층에 위치하는 만큼 타팀의 회식이 잦아 꺼리게 된다. 장인족발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다양한 술집으로 2차 이동이 용의하다는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장이냐 뽕이냐 그날마다 선택의 재미가 있다.



7. 참숯불닭갈비


[허브 천국]

춘천이 고향인 나에게 닭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그리 달갑지 않다. 질리도록 먹어왔던 음식인데다 왠지 서울의 철판 닭갈비는 묘하게 단맛이 많이 느껴지고 어릴때 먹던 닭갈비집 특유의 친근하고 저렴한 분위기가 아닌, 마치 패밀리 레스토랑스럽기도 한 낯선 인테리어 때문이기도 하다.


쇠비린내 물씬 풍기는 철판에 닭올리고 양념올리고 양배추와 고구마, 떡, 양파를 듬뿍 올린 뒤 '떡 익으면 떡부터 드세요'라는 '맛있게 드세요'와 등가치환 가능한 단어를 내뱉고 가는 종업원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로소 시큼한 오이냉국에 소주부터 마셔대는 그 느낌이 내가 생각하는 닭갈비인데.....


2000년 초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숯불 닭갈비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스러운 서울식 닭갈비만큼이나 낯설었다. 하지만 맛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춘천에도 꽤나 많은 숯불닭갈비집이 생겼더라. 애막골 근처에만 있었는데....


여하튼, 참숯불닭갈비는 위에서 언급한 우겹우겹, 한길국수 등 독산역 고가다리 아래 음주천국거리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언제나 만석을 자랑하는 인기 술집이다. 명이나물이나 깻잎 장아찌, 무 절임이나 매운 양념이야 어디에서나 쉽게 볼수 있는 안주, 아니 반찬거리이지만 특이하게도 계란 장조림을 내어주는 센스는 앞으로 닥칠 음주행위 이전 음주자의 위벽을 보호하게 하는 주인어른의 속깊은 배려가 아닐까?


양념 닭갈비도 맛있지만 쉽게 타는만큼 숙련된 구이어를 필요로 한다. 구이어란 굽는이, 보통 가장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은, 혹은 남이 굽는걸 참지 못하고 스스로 구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지만 나이와 직급을 내세우는 꼰대가 아닌 나로서는 '고기 옆에 앉은 사람이 구이어'라 생각한다.


프로 구이어와 합석한 술자리라면 그의 스킬을 시험해볼 겸 참숯불갈비로 이동하자. 양념 닭갈비의 닭껍질 부분을 은은하게 타지않고 구울 수 있는 구이어라면 평생 술자리에 끌고 다니면서 마음껏 부려먹자. 술값은 대신 내주는 것이 구이어에 대한 예의.




아직 멀었다. 독산역 2번출구 부근의 술집 절반만 언급했는데 이정도로는 부족하다.


다음 이시간에는 짜투리 술집과 다음날 해장할 수 있는 위장장애 치료 음식점 소개를 해볼까 한다.


(회사 근처에 갈만한 술집이 없다는 직장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음주 노오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해주려다가 급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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