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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뒤 남은 의문스러움

영화 <미 비포 유>

by 골방우주나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C1%B8%BE%F6%BB%E7.jpg?type=w1 어느새 두 달 전


존엄사 :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무의미한 연명조치에 해당하는 의료행위(인공호흡장치)를 중단해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의학계에서는 존엄사라는 명칭을 '연명치료중지'로 통일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연명,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위해 치료(생명유지장치)는 수행된다. 존엄사를 선택하는 것은 자살이고 존엄사를 돕는 것은 자살 방조라는 의미에서 불경스러운 행위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입장 또한 고려해 보아야한다. 존엄사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마땅한 해답이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도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도 아니다. 어느 선택도 환자를 위하는 선택이지만 동시에 환자를 해치는 선택이기도 하다.
[미 비포 유]라는 동명의 소설을 각색했다. 윌 트레이너라는 남자는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멋진 삶을 살다가 어느날 벌어진 우연치않은 사고에 의해 척수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고 겨우 엄지와 검지를 움직이고 목 위로만 움직일 수 있게된다. 한 순간의 사고에 의해 전신 마비 환자가 된 남자는 하루에 일어나면 창밖을 보며 시간이나 축내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남자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남자에게 성격 좋고 활기넘치는 여자, 루이자 클라크가 남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인생의 멋진 부분을 보여줄려고한다. 여행, 공연 관람,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남자에게 해주고 싶은 여자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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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이야기를 뻔히 예상하고 보았고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사실 영화를 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잘 차려입고서 비를 맞고가는 것도 모자라 갑자기 사고를 당하는 남자는 영화적 설정이 다분해 보였다. 만약 원작이 없었다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했을 것이다. 원작을 읽지 않아 책에서는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흐름을 다수 끊는 설정이나 개연성이 자주 몰입을 방해했다. 메뉴얼을 그렇게 읽고도 남자에 대한 일들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루이자의 모습은 더욱 그러했다.
돈이 많지만 전신 마비라는 장애를 지닌 남자와 돈이 없지만 신체가 건강하고 톡톡 튀는 생기를 지닌 여자의 대비가 극명히 드러난다. 쌀쌀 맞게 구는 남자의 까칠한 성경과 여자의 솔직함과 붙임성까지 영화는 클리셰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런 대비에서 이 영화는 [언터쳐블, 1%의 우정]과 비교되어야 할 것 같다. 단편적으로 비교하자면 [언터쳐블, 1%의 우정]이 더욱 재미있었다. 영화 내내 유쾌한 분위기로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흑인 드라스가 지닌 솔직함과 붙임성이 극을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해낸다. 반면 [미 비포 유]에서의 루이자의 역할과 분위기를 조절하는 능력은 [언터쳐블]보다 약하고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란하게 움직이는 루아자의 눈썹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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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삶, 생명, 사랑, 당신, 나 등과 같은 큰 분류, 커다란 개념을 영화는 줄곧 쏟아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감동을 위한 장치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존엄사라는 큰 윤리적 문제 앞에서 작은 것만 바뀌어도 영화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는 큰 영향을 미치기에, 힘든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과연 썰렁한 농담만큼이나 탄탄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가 줄 수 있는 감동에는 한계가 있다. 중대한 문제인 만큼 고민하고 격정적이거나 고양된 감정이 오가는 사건이나 장면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미 비포 유]는 울기엔 덤덤하게 끝이나고 웃기에는 극이 다루는 문제가 가볍지 않다.
애매한 감정의 소모가 지속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소설이 독일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만큼 감정적인 부분을 다루는데 탁월한 힘을 보여줄 것이라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니면 조금 딱딱한 독일인과 존엄사 논쟁이라는 윤리적 문제의 철학적 결합인가.) 어떤 조절도 없이 영상은 이야기를 구현해내어 그대로 찍어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미화하려는 의도들도 엿보인다. 과연 [미 비포 유]가 존엄사의 논쟁에 걸맞는 잘 만든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아픈데도 혈색이 좋은 배우를 써가면서 말이다. 에밀리아 클라크의 꿈틀거리던 눈썹만이 기억에 남는다.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희생자.jpg 뜬금없는 희생자

7년이나 사귄 여자친구가 우연히 일하게 된 부잣집에 있던 잘생긴 전신 마비 환자와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되어도 자기가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남자다. 그리고 사과하는 날 돌연 허니문을 가는 것이냐며 충격에 휩싸여서 뭐라고 해보았지만 여자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그냥 넘어간다. 우리 청년 사업가 님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해야했던 것인가. 루이자의 감정이 윌로 쏠리게 되는 과정은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설명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사명감, 윌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자신 뿐이라는 소명을 가지고 윌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생각했다면 남자친구에게 확실히 설득해야한다. 단지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기 보단 말이다.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그런 역할로도 안쓰인 남자친구는 그냥 남자친구로 등장해서는 그냥 남자로 돌아갔다. 왜 출연한 것인가.
루이자 또한 그렇게 열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감상에 빠져 일이나 저지르기에 바빴다. 진탕에 빠질거 같다는 말에도 그저 낙관으로 일관하는 성격부터 여행을 가서는 집안에 있다가 DVD나 보자는 말을 하는 루이자는 윌을 생각하는 것인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인가. 오히려 침묵하거나 새롭게 할 수 있는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차를 다른 곳에 대고, 휠체어가 갈 수 있는 해변가를 찾는 등의 노력말이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윌의 유산을 받은 루이자가 프랑스를 활보하는 것은 이야기를 신데렐라 스토리로 만들어버린다. 사랑을 했고, 열심히 했고, 돈을 받고 꿈을 찾아나가는 신데렐라가 되어버린다. 감정의 교류보다 신데렐라가 보고 싶은 것인가. 일관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는 평범해져버린 캐릭터는 몰입을 방해하고 진부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존엄사의 무게는 가벼운 이야기로 치부되어 버린다.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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