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든 일상의 걷어내기

영화 추천 <데몰리션>

by 골방우주나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C6%F7%BD%BA%C5%CD1.jpg?type=w966 제이크 질렌할! 장 마크 발레! 출처 : 네이버 영화

반복되는 일상 일상 일상에 찌들어 피곤하진 않은가? 피곤을 넘어 무뎌진 감각들로 뚱하게 아침을 맞이하는가?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곳으로 출근하고 정해진 일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정신없이 바쁘니까 가득 찬 하루를 살고 있느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가득 찬 일정에도 지루함을 느끼는가? 이러한 물음들을 모아 모아 물어보아도 어차피 답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질문들은 언제나 무의미하지 않다. 그리고 이 질문들 중 하나라도 와 닿는다면 [데몰리션]을 봐야 할 이유가 하나쯤 생긴 것이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와일드를 연출한 장 마크 발레의 최근작이며 여느 그의 영화가 그렇듯 빠르게 한국 시장에서 흥행은... 그래도 마성의 배우(나이트 크롤러를 기억하자.) 제이크 질렌할과 부담스럽지 않은 스토리텔러 감독이 합쳐진 영화는 어떨지 궁금해서 보고 왔다. 심심한 날 여느 때와 같은 일요일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주말의 끝, 다시 일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막막할 때 이 영화를 꺼내보기를.


※개봉 2주차 현재(16.07.27일 기준) 서울의 아트 나인에서만 상영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엔 영화관만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33424&mid=30829


힘이 죽 빠진 채 영화가 시작하고 데이비스의 표정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멍하다. 옆에서 말하는 아내의 말은 잘 들리지도 않고 세상 무엇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함께 그는 정신을 잃는다. 병원에서 아내는 죽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남는다. 장인이 그에게로 와 아내가 죽었음을 알린다. 기력이 다한 그는 판매기에 가서 '땅콩 m&m'을 먹으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른다. 웬일인가, 초콜릿이 떨어지지 않는다. "저기 있는 판매기에요, 내 캔디가 막혔어요(stuck)."하는 데이비스의 말에, 간호사는 무심하게 대답한다. "종종 그래요."
데이비스는 아내의 장례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나와 거울을 보고 울어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대신 판매기 회사에 항의 편지를 쓴다. 자신과 아내의 이야기를 담아서 말이다. 우리의 일상은 때때로 여러 가지 일들로 턱턱 막히곤 한다. 어쩌면 부주의로 인한 일이거나, 생각지도 못한 사고에 의해서. 사람들은 일상적인(패턴화된) 방식을 통해 막힌 일들을 뚫어 나간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아내의 장례식이 그의 슬픔을 드러내지 못 했다. 그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C4%BF%C7%C7%B8%D3%BD%C5.jpg?type=w966 커피 머신 : 분해(파괴)의 시작 출처 : 네이버 영화
%C4%B3%B7%B1.jpg?type=w966 출처 : 네이버 영화


장례식 후 바로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는 데이비스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의문스럽게 만든다. 심지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모습은 보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이다. 그런 데이비스에게 전환을 가져온 건 장인이 건넨 걱정스러운 말이다.

"무언가를 고치려면, 모든 것을 분해한 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야 해."


그래서 데이비스는 말끔히 차려진 정장을 입고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부탁했었던 냉장고를 고치려 한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냉장고를 모두 분해해 버리곤 내동댕이 쳐버린다. 그리고 걸려온 건 자신의 항의 편지를 받은 캐런의 전화였다. 캐런과 만나게 되며 데이비스는 분해와 파괴의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간다. 그는 자신의 일자리에 있는 컴퓨터를 분해하거나 장인의 집에 있던 불이 잘 들어오지 않는 전등을 분해해 버린다. 또 공사장으로 나가 건물을 부수는 일을 자신의 돈을 내고서 한다. 그에겐 그 일이 '부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리라. 실제로 그가 하던 '아무것도 아닌' 숫자들을 다루는 원래 '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팔과 해머로 눈앞에 있는 것을 부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분해하는 일은 그것의 원리를 찾는 일이다. 물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찾게 되는 과정이다. 물건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데이비스는 분해의 과정을 통해 무관심하게 살았던 자신의 주위에 관심을 표현한다. 분해의 과정이 파괴하는 것은 일상, 겹겹이 쌓여 찌들어 있는 일상이란 껍데기이다. 일상적인 것, 온전한 것의 파괴를 통해 데이비스가 찾은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분해를 마친 뒤 남은 반짝이는 작은 부품을 찾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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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져 가는 힐링 라인... 출처 : 네이버 영화
러브 라인이 짙어져 가는 거 같기도 하지만... ※아닙니다.

데이비스는 돈을 주면서 공사장 일을 하면서도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계속 공사장에 나간다.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우연한 계기일 뿐이다. 단순히 실수로 밟은 못처럼 고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훅 다가온다. 아니면 방탄복을 입고 맞은 총알처럼 말이다. 그렇게 비슷한 경험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도 우리는 우연히, 차에 있던 작은 쪽지로 그 고통이 얼마나 큼지막하게 내 마음속에 있었던 것인지 알게 된다. 데이비스가 차 안에서 아내의 쪽지,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라고 적힌 쪽지를 보고 흐느끼는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마음이 무너졌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

가장 즐겁게 본 장면은 하나 더 있다.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데이비스가 헤드폰을 쓰고 길거리를 걷는 장면이다. 예고편에도 잠깐 나오지만 장면을 자세히 보면 데이비스를 뺀 다른 이들은 모두 뒤로 걷는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았다면 누군가가 담배 연기를 다시 들이 마시는 장면도 연출된다. 모두가 똑같은 방향으로 갈 때 데이비스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 아마 촬영은 데이비스만 뒤로 걷고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걷는 것을 촬영했을 것이고 그것을 되감기를 통해 그 장면을 연출한 듯하다. 장면이 가져다주는 의미, 데이비스만 '앞'으로가고 다른 이들 모두가 '뒤'로간다는 의미가 느껴졌다. 사실은 그가 뒤로 가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데이비스는 과거의 산물들을 부순다. 자신의 뒤에 남겨진 모든 것들을 부순다. 그리고 결국엔 결혼까지 분해한다고 결혼의 산물인 그의 집을 부순다. 파괴(데몰리션)은 그가 쌓아온 것들을 부수고 다시 끔 고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부수어진 집엔 새로운 집이, 부수어진 그의 일상엔 새로운 출발이 다가올 것이다. 아내와의 아름다웠던 시절 함께였던 회전목마를 고쳤고 다른 이와 그 회전목마를 나누는 것처럼. 새로이 데이비스는 출발한다. 아이들과 힘차게 뛰어가는 데이비스의 모습이 희망차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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