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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08. 2016

뜨겁게 피어나는 인간미

영화 <밀정]>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밀정, 그림자들의 시대

 많은 관람객들의 기대를 받으며 [밀정]이 개봉했다. 기대하던 관람객 중 하나인 필자는 개봉날에 맞춰 [밀정]을 보고 왔다. 일반적인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예상 밖이다. [악마를 보았다], [달콤한 인생]을 연출하며 자신만의 영화 기준을 만드는 것으로 보였던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라는 예상을 깨고 [밀정]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온다. 처음 김지운 감독이 영화를 '차갑게'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열렬한' 분위기가 났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완연히 불 붙이는 뜨끈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하나 빼먹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밀정]이 제작사 워너브라더스가 제작, 투자한 국내 1호 작품이라는 것. 한국 감독, 한국어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할리우드 자본이 결합되어 있다. 이는 [밀정]이 의열단의 이야기이자 독립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애국심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지 못하도록 영향을 끼치는듯하다. 국제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런 영향은 오히려 [밀정]이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에 도움을 준듯하다. [밀정]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에.

하시모토 배역을 연기한 배우는 엄태구 배우 이다. 프로필의 아련한 눈빛이랑은..

 뻔할 수도 있었던 배신자나 스파이를 다루는 이야기를 충실히 받쳐주는 것은 배우의 매력이다.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정이 아닌 굵직한 연기로 이끌어가는 배우의 매력이다. 그런 점에서 송강호라는 선택은 [밀정]에서 빛을 발한다. 송강호이기에 보일 수 있는 매력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온전히 감당해낸다. 연출은 힘을 빼고 송강호의 폭발력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한듯하다. 김지운 감독은 '연출은 거들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는 영화가 [밀정]의 초반부를 보며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정말 다른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통 첩보물'이라는 수식어처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한 인간으로서의 스파이가 가지는 감정들을 드러낸다. 이와 달리 [밀정]은 하나의 감정의 양상으로 뭉쳐진 채 인물들이 목적적으로 행위한다. 이야기는 한 개인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요소로 사용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주인공은 인물의 감정을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것을 돕는 관찰자의 시점이고 [밀정]의 주인공은 감정의 이입을 돕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의 선택은 다시 힘을 얻는다. 송강호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올 영화이다. 필자는 2시간 20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에도 호흡을 잃지 않는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 [밀정]은 어쩌면 송강호 배우가 피어 올리는 인간미이다.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 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밀정]에서 주요한 역할은 역시 밀정 역할을 맡은 배우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정출을 제외한 밀정들은 이정출을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되어 버리고 만다. 특히 의열단 내의 캐릭터들은 제대로 자리도 못 잡거나 자리를 잡으려 할 때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정출의 행방과 상관없이 보이는 의열단의 몰락은 굳이 보여 주었어야 했나 하는 의문을 남긴다. 긴박하게 쫓기는 김우진의 씬을 넣는 것이 더 괜찮지 않았나 한다.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흐지부지하게 연결된 플롯들은 애먼 잔 감정들만 남긴다. 어머니를 두고 가는 애처로운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극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정출의 감정과는 상관없는 감정선이다. 후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에도 이정출은 단호한 결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쏟아붓는 감정선은 이정출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에 방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곡하게 피어 올리는 열렬한 인간미. [밀정]의 '온도'는 온연히 차오른다. 차갑게 내려앉은 이정출은 냉철하게 자신의 옛 동지들을 잡는 경찰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술을 먹으며 달아오르는 마음만큼이나 점점 달아오른다. 기차에서 자신의 냉철한 옛 모습 같은 하시모토를 죽임으로써 선택을 한다. 이후 연계순을 뜨거운 인두로 어쩔 수 없이 고문하며 마음은 끓어오른다. 김우진을 희생시키고 자신의 삶을 부지하자 마침내 이정출은 '의열'단원이 된다.

자! 를 열댓번 들은 사람의 눈

 이정출은 재판장에 끌려와 억울하다며 자신은 일본 경찰로써의 일을 완수하려 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하며 꺽꺽 서럽게 운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서럽게 우는 이정출의 모습은 비극적인 상황에 맞물려 극단적인 시너지를 낸다. 자신을 믿어주고 치료해주던 이들을 부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는 발언을 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상황 말이다. 복잡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이정출은 서럽게 운다.
 새벽녘의 짙은 시퍼런 빛날 같던 그의 마음은 뜨겁게 피어오르던 밤낚시의 불빛이 되었다. 차갑게 눈발이 내리는 날 불빛 같은 이정출이 의열단장에게 전하는 살아서 보자는 말은 그를 대변한다. 김우진은 경성 진입 전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중 누군가 죽거나 다치더라도 폭탄은 배달되어야 한다고, 임무는 우리 중 누군가에 의해서든 완수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한 의열단원 모두가 죽거나 투옥되고서 임무를 완수한 것은 '모두의 실패'를 딛고 살아있는 이정출이었다.
 이렇게 이정출의 마음의 온도를 따라 영화는 전개된다. 완연히 피어 올리는 그의 마음을 따라간다. 차갑던 그의 마음을 너무 갑자기 끌어올릴 수 없었기에 지날 수밖에 없었던 '미지근한' 부분에서 영화적 재미가 덜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이정출의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감정을 얹었던 연출도 아쉽다. 그러나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변모한 결과와 과정을 중심으로 찍어내는 감정적인 영화였음에도 2시간 20분을 이끌어 낸 송강호 배우의 연기 만으로도 가득 찬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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