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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09. 2016

'촉'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 <범죄의 여왕>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 404호 엄만데"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고 다니는 미경은 '대한민국 아줌마'다. 불법 '야매' 시술 전문인 동네 미용실 아줌마. [범죄의 여왕]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미경이다. 사회의 중심은 아니더라도 구석 어딘가 존재할 듯한 인물이다. 이런 '구석 현실' 작품은 어디서 느껴봤다 했더니 [족구왕]을 제작한 광화문 시네마의 작품이다. [족구왕]의 경우 복학생을, [범죄의 여왕]은 억척스러운 아줌마를. 영화 [범죄의 여왕]은 광화문 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이다. 
 영화에서 드러난 미경의 모습은 사실적이다.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전형적인 '아들 챙기기에 극성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고시생 아들을 능청맞게 "이판사, 이판사"하며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애지중지 아끼던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수도요금이 120만 원이 나왔으니 돈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요금에 엄마는 짐 보따리를 꾸려 아들이 사는 서울로 향한다. 그리고 '엄마'가 서울로 향하는 머나먼 여정의 도로를 보여준다. 빠른 속도로 감아가며 서울을 향해 간다.

수도 요금이 120 일리가 없잖아

 영화가 촬영하는 공간은 신림동 고시촌이다. 작은방에 틀어박혀 학원과 집을 오가며 일 년에 한 번뿐인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한 곳. 서울로 향하는 머나먼 여정과도 같은 시험의 여정을 치르는 사람들. 지친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흰 배경에 빼곡한 글들을 들여다보는 학생들이 빼곡한 고시촌을 찍는다. 누구든 고시촌에 들어가 보았거나 일생일대의 시험을 위해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공간. 유쾌함도, 슬픔도, 격분도 용인되지 않는 자제와 인내의 공간을 찍어낸다. 이런 공간에 대한 활용은 '광화문 시네마틱'하다. [족구왕]에서 '복학생'이라는 대학생들이 공감할만한 현실적인 공간을 활용한 광화문 시네마의 특성이 드러나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 [범죄의 여왕]은 어딘가 친숙하다.
 친숙한 공간에 '수도 요금'이라는 생활-결합적 문제는 120만 원이라는 극적인 과장과 만나 영화에 충분한 긴장을 불어넣는다. 이에 현실적인 억척 엄마가 들어가니 유쾌한 웃음꽃이 핀다. 익살스러운 상황이다. 그리고 조연들의 캐릭터도 만만치 않다. 개태와 덕구, 게임 폐인녀, 불법 제품을 만들어 파는 멘션 관리소 일당까지. 영화는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배경과 캐릭터로 유쾌한 그들만의 세상을 구현해낸다. 우스꽝스러운 수도요금 120만 원과 함께. '수도요금 120만 원'은 사실 이요섭 감독의 경험담이라고 한다. 오래된 주택에 살았던 때 50만 원의 수도요금이 나온 적이 있다고.

약속이다 개태야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깡패 같은 모습을 한 관리소 사람들에게 '쫄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베풀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미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엄마의 모습이다. 억척스러운 엄마의 모습.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동시에 오지랖도 넓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정보를 얻어 낸다. 그런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는 아들과의 대조를 이루며 더 강조된다. 아들은 미경의 억척스럽거나 오지랖 넓은 성격을 질색하며 싫어한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미경의 모습과 반대로 아들 익수는 고독한 세계를 살아간다. 혼자인 게 편하고 혼자여야 버틸 수 있는 혼자인 세계.
 익수의 모습은 고시촌이라는 배경과 겹쳐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을 나눠 살아가지만 그들 사이에 세워진 가벽으로 1호와 2호 3호 4호가 된다. 이름보다 자신이 점유한 공간으로 불린다. 공간을 나누는 가벽은 얇아 여러 소음이 가벽 위를 지나다닌다. 그러나 소음은 환영받지 못한다. 공격성 가득한 붉은 펜으로 전하는 '죽여버린다'는 메시지를 만들어 낼 만큼. 사람들은 서로를 나눠 벽을 치는 것으로 모자라 벽을 넘어 다니는 어떤 간섭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람들'로서 살아가지만 '개인'으로서 존재한다.

엄마가 내 학원을 찾아왔다.

 '개같이 태어나서' 자신의 이름을 개태로 지었다는 개태. 그냥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덕구.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진숙. 세 인물은 미경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큰 단서들을 미경에게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 세 인물은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인물들이며 심지어는 서로를 무시한다. 이런 세 명의 소외 계층(?)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접근하고 말하는 것은 미경의 인간적인 면모에 있다. 개태에게 아들이 되길 제안하고 덕구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며 허언증이라는 진숙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태도에 있다. 미경은 소외되거나 스스로를 소외시킨 자들에게 자신의 따뜻한 손길을 서슴없이 건넨다.
 모든 것은 그녀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엄마라서 그런 점도 있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바른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주변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진솔한 접근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간다. 미경은 (영화에서) 단절된 사회에 다른 개인과 소통하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다. 자신을 막는 아들에게 "엄마가 사람 구하겠다는데 판검사 되겠다는 놈이 가지 말라는 게 정상이야?"라고 두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미경은 화려한 옷만큼이나 어디서나 당당하고 힘을 잃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억척스럽다'를 넘어 미경이라야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들게끔 한다. 멘션의 사람들은 그런 당당한 미경으로 인해 변화를 맞는다. 욕만 하던 개태는 바른 일자리를 찾고 덕구는 자신이 가진 벤츠를 처음 활용해보고 진숙은 방을 나온다. 그리고 403호 강하준은 칼을 손에서 놓는다. 강하준이 휘두르던 칼은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십시'로 오랜 시간 고시촌에서 살아온 그는 한계를 맞이한 인물이다. 모든 것이 극한으로 몰려 칼과 살인이라는 폭력을 휘두르는 캐릭터다. 그런 사람이 드는 식칼은 누구나 궁지에 몰려서 손에 쥔 '발악'의 상징 같았다. "어디서 내 새끼한테.."라며 맨손으로 하준의 칼을 잡아 막는 미경의 모습은 하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가 엇나간 폭력성으로 삶을 망치기 전에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줬다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하준의 범죄는 당당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미경에 의해서 밝혀진다. 이런 미경의 태도가 없었다면 하준의 '발악', 수도 요금이 120만 원이라는 비정상적인 수치를 또 다른 비극의 경고로 받아들이지 못 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그녀를 제외하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거나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점점 타인과의 소통이 끊어져가는 사회에서 궁지에 몰려가는 개인이 선택한 발악의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시나 처단이 아니라 관심과 이해가 아닐까. 미경의 멘션 사람들에 대한 '오지랖'이 사건을 풀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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