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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10. 2016

잊었던 세계를 일깨우는 빛

영화 <그림자들의 섬>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찬란한 우리들의 우주를 보라'

 장편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 2014년 서울 독립 영화제 대상 수상작. 한진 중공업. 영도 조선소. 노조. [그림자들의 섬]을 설명할 키워드는 또 어떤 게 있을까.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 중공업에서 일하다가 사측으로부터 해고당한 5명 노동자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멀리는 1980년 대 가깝게는 2000년대에 입사하여 영도 조선소에서 오랜 시간을 일해온 그들의 입사 초기부터 가까운 시점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조선소맨'이 되어 시대의 각광을 받던 제조업의 노동자가 되어 그들이 만든 배가 기한을 채우고 큰 바다 어딘가 잠들더라도 계속 배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현장에 있지 못한다.

 그들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삶을 담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마치 노예처럼 취급받으며 제대로 된 복지도 없이 일을 해왔던 과거를 듣고 있노라면 30년이라는 시간이 가진 무게에 자연스레 눌리게 된다. 압도당한다. 오랜 시간을 '현장'에서 버텨온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영화도 담아내지 못하는 '삶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인터뷰 형식의 이야기로 툭툭 뱉어내는 이야기들은 몇몇의 사진들이 곁들여지며 특정한 공간과 시대의 삶을 생생히 그려낸다.
 이런 표현 방식을 통해 [그림자들의 섬]은 노동자들의 일터를 생생히 구현한다. 화려한 컴퓨터그래픽도 치밀한 재현 세트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찍고 있던 그대로를 말해주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진솔한 구전으로 생기 있게 살아난다. 마치 섬처럼 멀리 있었던 이야기들은 빛을 맞아 빛바랜 작업복의 모습을 드러낸다. 잊혀가고 있었던, 평소엔 빛이 비치지 않는 곳, 그림자들의 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우리가 알아야 했던, 혹은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했던 현실을 조명한다.

조금씩 만들어 이어 붙여 만드는 거대한 배

 배를 만드는 것은 경제와 비슷하다. 각기 만들어진 부품과 강철판들을 모아 조금씩 붙여나감으로써 완성해나간다. 수십 톤이라는 수학적으로 이해 가능한 규모의 무게를 감당해내는 거대한 배를 만들어 나간다. 경제에서 GDP라는 것은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것들의 가치 총합이다. 경제는 조선처럼 작은 생산들이 모이고 모여 몸체를 키운다. 그리고 경제를 이루는 모든 상업 용품은 만들어진다, 노동자에 의해.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것들을 우리는 먹거나 입고 사용한다. 우린 노동자가 만든 세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 거대하고 방대하게 우리를 감싸고 있어서 우리는 이것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림자들의 섬]은 잊혀 가던 것들을 일깨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삼성 에어컨 하청 노동자 추락사 등 내몰린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노예 같았던 노동조건을 어떻게 분노하고 어떻게 싸워서 쟁취해왔고 어떻게 다시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네이버 영화 [그림자들의 섬] 제작노트 중 일부 발췌.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의 [현대조선잔혹사]에 따르면, 2014년 12월 말 4만 105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은 2016년 3월 말, 3만 3317명으로 줄어들었다. 1년 3개월 사이 7742명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셈. 이는 특히 하청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국한된 일이기에 더욱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조선소 노동이 참혹할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것은 <그림자들의 섬> 주인공들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동료의 죽음을 남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김진숙 지도 위원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다시 한 번 허환주 기자의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한 해 동안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1850명으로, 하루에 최소 다섯 명이 죽어 나가는 꼴이라고 한다. 이는 2014년 국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희생자 수(357명), 1991년 걸프전 때 미군 사망자(382명)보다 약 다섯 배나 높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수치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끝나갈 무렵,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누군가 평온했던 소박한 일상의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뜨거운 벽 아래 누워 발을 말리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삶은 피하거나 실패한 끔찍한 선택이 아니다. 조선이라는 업종에 대한 자부심을 가득 안고 살아왔다. 단지 위협받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고 더 '인간다운'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다. 지극히도 당연한 일들을 싸워서 얻어내야만 하는 현실은 겨울 바다처럼 차갑다. 이런 차가운 현실 위에 따뜻한 꿈을 짓고 싶은 마음은 진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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