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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11. 2016

팀 버튼의 판타지 클래식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팀 버튼이 만들어오던 판타지들 중에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꾀나 '클래식'한 부류에 속한다. 동명의 원작은 1865년 영국의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이 썼다. 무려 19세기에 쓰인 것. 그러나 이 동화가 보여주는 내용은 21세기에 보기에도 '그로테스크'하다. 옷을 차려입은 흰토끼와 우편배달부 물고기, 웃는 체셔 고양이, 거짓 거북이, 완전히 미친 모자장수 등이 등장한다. 오래된 고전이지만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눈으로 묘사된 어른들의 세계는 이렇게 기이한 것인가.
 루이스 캐럴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 교수를 지낸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논리적 역설, 비꼬아진 형식 등 언어유희적인 기법이 활용되고, 이는 그로테스크한 내용과 만나 '형식적 광기'를 발산한다. 루이스 캐럴은 일종의 낱말 풀이 게임처럼 글을 쓴 것이다. 곳곳에 숨겨진 '의도된 미친 짓'은 앨리스가 처한 상황을 독자들이 괴상하게 받아들이게 하면서도 이것이 단지 하나의 이야기, 공상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심는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이건 꿈이야"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하듯이. 어쩌면 이 동화는 한 어른이 아이가 되어 묘사한 어른들의 세계이다.

여기가 어디야..?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런 그로테스크한 광기를 잘 표현해낸다. 과하지 않게 제한된 표현들로 말이다. 팀 버튼이 표현해왔던 부드러운 판타지의 표현 방식은 앨리스의 이야기를 만나 절충된 기묘함을 보인다. 영화에서 표현된 캐릭터들은 기괴하기보단 기묘하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달갑지만은 않다. 이런 표현들은 캐릭터와 관객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갖게 한다. 그리고 캐릭터와 적당히 멀어진 관객들은 관객으로써 상황을 객관적으로 지켜본다. 팀 버튼은 루이스 캐럴이 쓴 원작의 느낌을 살려내면서도 다소 접근하기 힘든 표현들을 잘 깎아낸다. 앨리스의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웬 동물들이 말을 걸어오거나 하는 것들은 적당히 신기하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로 느껴지게 한다. 
 이는 기괴한 원작에 팀 버튼의 '부드러운 판타지'가 결합한 결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여전히 관객이면서도 영화를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앨리스와 동화되어 깊게 몰입하지 않고 여전히 관객인 채 이상한 나라를 둘러본다. 그리고 마냥 엉뚱하지는 않은 이야기를 봄으로써 팀 버튼만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받아들인다. 표현의 정도를 조절함으로써 작품의 판타지스러움을 적당하게 조절하는 감독의 능력은 탁월하다. 또한 영화에서 이야기는 앨리스가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이상한 나라를 19살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로서 재창조된다. 이로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원작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는 영화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적절한 표현력을 만난 앨리스의 이야기는 원작과 달리 꺼림칙하지 않게 새롭다.

WONDER LAND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불합리한 어른들의 세계, 코르셋을 끼고 머리를 단정히 하여 뻔한 일을 마치 엄청 새로운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현실에서 앨리스는 어른이 되어간다.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재미없는 춤을 추며 말이다. 이때 앨리스의 모습은 창백하다 못해 색을 잃어버린듯하다. 마치 죽어가는듯하다. 그리고 앨리스는 어른이 되는 순간, 청혼을 받는 순간 자신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토끼를 따라가서 토끼굴로 떨어진다. 이상한 세계에 도착한다. 그리고 돌아온다. 영화의 말미가 되어 돌아온 앨리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한다. 그녀는 관습적인 사회의 태도와 행동들로부터 떠나 바다로 나간다. (해적왕?) 자유롭고 상상이 가득한 세계로 진입한다.
 앨리스에게 어릴 적부터 꾸어왔던 꿈의 이야기인 '이상한 나라'는 앨리스에게 깨지 않는 꿈이 된다. 원작을 약간 비틀어 놓은 설정에서 앨리스는 어릴 적 겪은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것이 경험이 아니라 꿈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실이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것. 이상한 나라가 자신이 어릴 적부터 꾸어왔던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진짜가 아닌 가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앨리스는 '그 앨리스'가 아닌 것으로 받아진다. 앨리스는 어릴 적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모든 것을 믿지 않고 있는 '어른스러운' 앨리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압솔렘이시다.

 앨리스의 아버지는 그녀가 하는 모든 '이상한' 말을 믿어준다. 멋진 사람들은 어딘가 미쳐있다고 말하면서. 불가능한 상상들은 앨리스에게 현실로 나타나지만 19살이 된 그녀는 이상한 나라가 현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가 전해준 교훈을 잊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재버워키를 상대하면서 불가능한 6가지를 자신의 힘으로 실현해 내면서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극복해낸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이상한 나라'는 진짜이며 자신이 재버워키를 이겨낼 힘이 있는 '그 앨리스'임을 압솔렘과의 대화에서 알아낸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이 생각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자각하고 믿는 것. 그것이 앨리스가 재버워키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젠 내 길은 내가 정할 거야."라고 말하며 처음 모자장수를 구하러 가겠다는 결정을 할 때도 그렇고 "내가 '굉장함'을 잃었다고?"라고 반문하며 혼자서 붉은 여왕의 성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앨리스는 스스로를 믿으며 생각만 할법한 상상들을 실현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앨리스의 '굉장함'이자 힘이다.

씨익

 이런 앨리스의 성장기는 묘한 이미지들로 표현된다. 불가능한 상상이 현재와 맞닿아있게 됨으로써 현실감이 없던 캐릭터들은 현실의 경계에 서있는다. 멀리 떨어져 있던 판타지는 가시권 내에 형성된다. 어떤 익숙함을 불어넣는 팀 버튼의 방식이 적절한 거리감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렇게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이상한 나라가 된다. 실재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가 확연히 있다고 말하긴 힘들더라도 없는 것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다. 유쾌한 상상력으로 어느새 가까이 온 판타지를 새롭게 하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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