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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15. 2016

영화 리뷰 [카페 소사이어티]

달달하지만 어딘가 텁텁한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1930년 대 사교계를 일컫던 명칭이다. 우디 앨런 감독은 이번 영화가 "사람들이 인생에서 내리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할리우드와 뉴욕을 오가는 사람들이 한 선택은 어떤 것일까. 뉴욕에서 자란 우디 앨런이 그린 1930년 대의 아름다운 뉴욕 화려함이 가득한 할리우드에서 이야기는 벌어진다. 사교계와 인생에서 내리는 선택의 사이엔 어떤 연관점이 있을까. 그리고 우디 앨런은 언제까지 영화를 만들까. 지난 7월 개봉한 [이레셔널 맨]에 이어 9월에 개봉한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를 만나보자.
 [이레셔널 맨]은 미국에서 2015년 5월에 개봉했다. 1년을 넘는 시간이 지나 개봉한 [이레셔널 맨]에 비해 [카페 소사이어티]의 개봉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이유인즉슨 칸 영화제 개봉작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우디 앨런 감독은 '칸의 사랑을 받는 감독'이란 수식어에 어울리게 칸 영화제로부터 14번의 초대와 3번의 개막작 선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칸 개막작이었던 [미드나잇 인 파리]로 시작한 근대 유럽 탐구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카페 소사이어티]를 만들었다.

이 사람 마술사인 줄만 알았더니..

 [카페 소사이어티]가 보여주는 1930년대는 세련됐다. 세련된 화려함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사람들은 극적이다. 클래식하면서도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 새벽녘의 빛이 건물에 비치는 센트럴 파크, 우디 앨런의 '로망스'가 영화의 곳곳에 녹아난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보여준 낭만 가득한 화면을 뉴욕과 할리우드의 낭만으로 가득 채운 [카페 소사이어티]다. 수려한 영상미 와중에도 바비와 보니, 제시 아이젠버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매력도 가득가득 담았다. 정말이지 화면에 비치는 눈동자가 매혹적인 배우들이다.

[이퀄스]에 이어 '사랑하는 아름다움'이 되어가는 중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카페 소사이어티]를 소개하며 우디 앨런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내리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삶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하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한다. 이런 선택의 처음과 과정, 결과를 만나는 삶은 때로 고통스럽다. 그래도 삶은 "가학적인 작가가 쓴 코미디"일지도 모르겠다. 때로 고통을 주는 삶은 언제나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바비와 보니의 삶은 희극이다. 그들은 성공한 사교계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바비가 처음 할리우드를 밟던 때, 보니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키워갈 때 바비와 보니는 사교계에 대해 비판했다. '저급한 화려함'에 빠진 유명한 배우들이 큰 집을 살고 매일을 채우는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말이다. 그리고 그런 바비는 맨해튼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사교계의 거물이 되고 보니는 유명인과의 에피소드를 줄줄 읊는 필과 같은 거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비판하던 화려한 삶의 거물이 되었다. 그러니 그들의 삶은 희극이다.

"난 영화배우나 만나는 속물이 아냐." 라고 말하는 첫눈에 반한 사랑꾼.

 물론 그들의 삶을 조정한 건 어떤 '신의 간섭'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에로스라는. 사랑이라는 방향을 잃은 선택은 보니가 꿈 많고 자신을 사랑하는 청년보다 이미 성공한 거물을 택하게끔 했다. 또 바비가 이해할 수 없는 친형, 벤의 일을 도와 사교계의 거물이 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가학적인 신은 그 역할을 바비가 스스로 행하도록 했다. 우연하게 필에게 보니의 이야기를, 보니에게 필의 이야기를 하고 나니 그는 보니와 필의 오작교가 되어버린다.
 사랑이 꼬아놓은 인생의 고난들은 그들이 화려한 거물이 되는 것을 돕지만, 이 화려함은 저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덧없다. 제아무리 화려한 나이트클럽의 불빛들도, 분위기 가득한 재즈도, 유명한 사교계 인사들도 덧없는 것이다. 바비는 자신을 찾아온 과거에서 처음엔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그는 결국 과거를 찾아 헤맨다. 보니를 찾아 헤맨다. 그가 이루어 놓은, 가족과 화려한 불빛들과 사교계는 더 이상 그의 빛나는 성취가 아니다. 그의 어긋난 사랑의 흔적을 찾는 도구로 전락한다. 젊은 시절, 그가 순수히 사랑했던 보니를 찾는 도구 말이다. 보니 또한 바비의 접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 또한 젊은 그녀가 불편을 표하던 할리우드의 유명한 삶을 내려두고서 바비와의 시간을 찾는다. 그들의 화려한 밤은 공허한 사랑의 빈자리를 덮는 겉치레다. 덧없는 화려함이다.

그들이 사랑했던 한때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게 꿈처럼 남는다. 아득하게 멀어져 간다. 그들이 함께했던 소박한 로맨스는, 타코 집은, 아름다운 바닷가가 멀어져 가는 것이다. "새벽빛이 건물들을 비추는" 아득한 시간이 되어 나누었던 키스를 끝으로. 그들의 로맨스라는 이름의 불륜은 끝이 난다. "아직 당신 꿈을 꿔요."라는 보니의 말이 환청처럼 들리고 흔들리는 눈동자는 초점을 잃는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삶을 어떻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삶이 가져왔던 불확실함 사이에서 선택의 연속을 겪어왔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삶은 영화 그 자체니까. 또한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겠지.
 삶은 허무하다. 벤이 타인의 삶을 단 몇 초 만에 끝내듯이. 허무한 삶에서 사랑에 진정 임했다고 해도 필처럼 비즈니스에 치여 진심 담긴 고백이 구애인지 비즈니스의 한 종류인지 헷갈릴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불현듯 꿈처럼 몽롱해지면서 그렇게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 삶, 일, 사교계, 화려함, 명성. 이 모든 것들은 [카페 소사이어티] 안에서, 1930년 대의 뉴욕의 유려한 영상미로 거두어진다. 허무한 삶의 모습들은 화려한 영상미로 가려진다. 불편한 현실에 막을 내리듯.

내가 하면 로맨스?

 유리 잔을 들고 새벽의 센트럴 파크를 걷는다. 그리고 키스를 나누고 "이제 만족해요?"라고 묻는다. 무의미하지만 처절한 그들의 로맨스는 낯설다. 새벽녘 와인잔을 들고 나누는 키스라니. 화려하고 어딘가는 로맨틱하지만 낯선 그림이다. 처절한 그들의 비밀 연애는 타인에겐 불륜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제아무리 그들이 진심이라도 타인에게는 겉치레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그들의 애처로움은 코미디스럽다. 그들의 비극은 단지 고통스러운 희극으로 '관람되어 진다'. 비친다.
 그렇게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는 끝이 났다. 화려한 영상미와 배우들의 눈동자에 빠져 허덕이는 동안 화면 너머에 숨겨놓은 '웃픈' 이야기를 꿈처럼 끝맺으며. 이 영화는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포스터처럼 머리를 생각으로 가득 채운 채 거리를 걷고 싶게 하는 영화다. 아름다운 거리에 머리를 채우고 넘은 생각들이 가득 찰 때면, 어디선가 툭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날 거란 막연함을 기대하게끔 한다. 그리고 덧없는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겠지. 달달한 영상미 속 텁텁함을 담은 초콜릿 같은 작품 [카페 소사이어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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