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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18. 2016

영화 리뷰 [스틸 앨리스]

'나'이기 위한 노력의 끝에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병 - 증상, 기억력 감퇴, 언어 능력 저하, 시공간 파악 능력 저하, 판단력 및 일상생활 수행 능력의 저하, 성격 및 행동변화, 망상, 환각, 초조, 공격성, 자극 과민성, 이상 행동, 식이 변화, 수면 장애, 배회, 보행장애, 경직, 대소변 실금 등, 출처 - 네이버 건강백과.

 앨리스 하울랜드가 50의 나이에 받게 된 병명과 증상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그녀는 기억을 조금씩 잊어간다. 영화에서 알츠하이머의 증상들은 자연스레 드러난다. 이러한 연출은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영향이다. 영화의 공동 각본가이자 연출을 맡은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2011년 루게릭병을 선고받았다. 이후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 [스틸 앨리스]를 접하고 영화의 공동 각본가이자 연출로서 참여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뒤 반년을 채우지 못한 채 15년 3월, 생을 마감한다. (스틸 앨리스는 미국에서 2014년 12월에 개봉했다.) 

앨리스, 더이상 자신의 나라가 아닌 어딘가.

 줄리안 무어는 [스틸 앨리스]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영화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앨리스의 역할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연기는 정말이지 자연스럽다. [스틸 앨리스]라는 제목에서도 그렇듯, 영화는 앨리스를 언제나 잡고 있다. 앨리스가 살아온 세계를 비추고 앨리스가 살고 있는 '망각'의 과정을, 잊을지도 모르는 다가오는 미래를 비춘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을 온연히 드러나게 하는 것은 줄리안 무어다.

 줄리안 무어의 섬세한 연기가 꽃피우는 것은 리처드 글랫저의 집중된 시각이다. 감독이자 환자인 그가 바라보는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모습은 다른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모습과 다르다. 환자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환자라는 '비극'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 그들의 슬픔을 보여주기보다 환자의 모습에 온연히 집중한다. 앨리스가 걸린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앨리스에게 다가오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앨리스의 입장을 대변하므로 동시에 환자의 입장을 고려한다. 비극적인 상황을 위한 요소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이야기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앨리스의 감정에 공감하게 될 때 우리는 환자 앨리스가 아닌 인간 앨리스를 보게 된다.

계속되는 불안 속에서의 웃음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 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앨리스의 병명이 밝혀진 이후, 앨리스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점점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갈 때쯤에 나온 장면이다. 먼저 카메라가 아무도 없는 바다를 비춘다. 그리고 앨리스가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프레임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녀는 바위틈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그녀의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녀가 걱정되어서 일 것이다. 환자 앨리스는 불안을 준다. 앨리스가 말없이 걷는 바닷가는 불안하다. 단지 그녀가 바닷가에 있다는 것이 불안하다.

 남편이 그녀의 "앨리스!"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자 그녀는 활짝 웃는다. 아, 이 불안은 나의 걱정거리였던가. 이 면은 그녀의 시간은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주면서도 그녀가 환자라는 불안을 심는다. 알약 한통을 모두 입에 넣고 물을 마시라고 미래의 자신에게 죽음을 권고하는 그녀다. 그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만족을 위해 목숨까지 끊으려 하는 그녀다. 너무나도 멋진 삶을 살아왔던, 성공한 삶을 살아왔던 그녀 자신에게 내리는 사형선고다. 그리고 자살계획이 생긴 이후부터 그녀의 모든 행동은 불안하다. 점점 그녀가 자신을 잃어갈수록 스스로를 해칠 위험은 커져만 간다.

연설의 의미

  "제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죠. 순간을 살라고 저에게 말합니다.", "제가 끝까지 잡아두고 싶은 기억 중 하나는 오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지겠죠."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앨리스의 모습은 애처롭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어 끝까지 발표를 마무리하려 애쓰는 모습과, 과거의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신을 잡아내는 가련한 희망의 끈 같다. 잃어가는 과거와 기대할 수 없는 미래를 자신에게 붙잡아 두려는.

 앨리스는 기억의 대부분을 잃고 신발끈마저 못 묶는다. 자살계획마저 온전히 실행할 수 없는 그녀다. 그러나 그녀가 마지막까지 잊지 않았던 건 아이를 안는 방법과 사랑이라는 단어다. 치약을 어디 쓰는지 몰라도, 그녀는 아이를 따뜻하게 안는 법을 잊지 않는다. 두 딸과 한 아들을 안았던 '엄마'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앨리스는 리디아가 읽어주는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고 앞으로 를 꿈꾸며 고통스럽지만 나아가는 여정"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앨리스와 알츠하이머의 이야기 같던, 삶의 모습을 닮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은 앨리스의 입에서 힘겹게 흘러나온 단어는 "사랑"이었다.

나를 잃어가던 앨리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던 알츠하이머가 앗아가는 기억들 중 가장 잊기 싫은 건 사랑했던 가족들이 아닐까. 점점 흐릿해져 가는 일상에서도 그녀의 과거, 가족에 대한 기억은 점차 길게 떠오른다. 그리고 사랑했던 자녀들을 안아주는 법을 잊지 않았다. 알츠하이머라는 고난이 가득한 미래가 다가와도 그녀를 버티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을 잊지 않았음에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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