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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19. 2016

영화 리뷰 [시발, 놈:인류의 시작]

이유 있는 병맛(이길 바라며..)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2016년 8월에 개봉한 영화 [시발, 놈:인류의 시작]이다. 스스로 B급 아래 C급을 지향한다고 밝힌 만큼 충분한 C급 무비를 보여준다. 1000만 원이라는 제한된 예산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을 열심히 찍어낸다. 1시간을 조금 넘기는 러닝타임이 보여주는 한계처럼 이야기는 길지 않고 충분하지 못하다. 예산의 한계에 부딪혀 영화적 효과는 단순해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대체된다.

 [시발, 놈 : 인류의 시작]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면들을 보면 때론 안쓰럽기까지 하다. 스탭 모두가 1인 다역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원숭이 무리 중 맨 앞에 있는 것은 백승기 감독이다. 감독까지 자신을 출연해가며 카메라, 음향 등등 장비 담당자들도 출연했다고 하니 한계점이 더욱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분업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으니 질적 저하는 어쩔 수 없다. 멀티태스킹은 질적 저하를 야기한다.

 

창조적 진화론적 신화

 유려한 영상미는커녕 집중조차 확실히 할 수 없는 화면들, 어딘가 들리는 스태프의 웃음소리는 영화가 깔끔하게 정제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거칠고 투박하다. 이런 투박한 스타일은 보통 '그들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다, 백승기 감독만의 스타일이 되어가는 것이다. 500만 원의 예산으로 만들었던 [숫호구]에서 이어지는 톤 앤 매너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투박한 방식이 보여주는 연출과 제작의 과정을 추측해보자. 생각보다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단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낮은 예산으로 창의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예상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기대된다. 거칠게 찍어내는 영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러프한' 망상이 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러프한' 방식은 새로운 시도가 되어 딱딱한 방식을 환기한다. 이것이 두 번째 영향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고 더 많은 다양한 방식이 시도된다. 시도들은 다양성에 힘을 싣는다. 다양성은 매너리즘에 빠진 영화에 질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사랑에 빠진 표정을 보라..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 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시발놈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제아무리 C급을 지향하더래도, 15세 이용가라고 믿기 힘들다. 시각적 충격들이 계속 이어졌다. 표현하자면 마치 뗀석기 같았다. 한 돌로 다른 돌을 때려가며 만든 거친 도구 말이다. 그리고 웃긴 것은 어떻게 찍었을지 다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더 넓은 각도를 잡은 카메라가 하나 더 있는 듯 장면밖에 있는 모습이 계속 연상되었다.

 영화는 '거대한 사기'이다.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처럼 믿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실감 있는, '자연스러움'이 몰입을 만들어내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닿게 한다. 관람자의 몰입은 영상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몰입을 위한 여러 요소들을 구성한다. 디테일한 배경이나 설정,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같은 요소들 말이다. 그러나 [시발, 놈]은 이런 몰입에 대한 상식을 깨어놓는다.

지배와 피지배가 갈리는 역사적 순간..

 [시발, 놈]엔 몰입이 필요하지 않다. 거친 연출은 오히려 때때로 몰입을 방해한다. 마치 왜 그렇게 열내서 보고 있어?라고 묻는듯하다. 영화의 처음부터 밝힌 과학 잡지와 인류학 책, 성경이 결합된 스토리 또한 엉뚱하다고 말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내레이션은 거침없는 '직관적 영어'를 사용한다.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이다. 스스로가 C급을 지향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영화는 당당하게 별게 아님을 드러낸다. 

 집중해서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 그냥 술자리에서 떠들어대는 헛소리 일지도 모른다. 별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당당한 별게 아님'은 권위에 대한 반항 같다. 성경의 권위는 조악한 단어들로 표현된다. 과학적, 인류학적 지식들은 복잡하게 합쳐지더니 우스운 꼴만을 남긴다. 그래야만 했던 것들은 없다. [시발, 놈]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코드를 세상에 드러낸다. 그들의 '병맛'에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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