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욕망을 덮치는 파도

영화 <아가씨>

by 골방우주나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최근작 [아가씨]에 대해서 조금은 화제가 떨어진 지금에서야 리뷰를 쓴다. 영화가 재조명될 수 있는 부분은 다양하다.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 김태리라는 배우진의 '화제성'과 박찬욱 감독의 최근작이라는 부분에서 말이다. 영화가 다루는 쟁점들, 성적 다양성, 관음적 시선, 성적 대상화 등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iptv나 vod 시장에 풀린 아가씨를 되돌려보면서 앞에서 언급된 화제의 키워드나 쟁점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이자 널리, 많은 이들의 대화에 오르내렸던 영화 [올드보이]가 [아가씨]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바꿔줬다. 작가주의적 입장에서 박찬욱 감독을 이야기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올드보이]가 보여줬던 윤리적 쟁점(근친상간)이나 배우들이 화제가 되는 면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기억이 났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치열한 스토리의 진행과 감정선은 꽤나 균형 잡힌 절제와 배우들의 연기로 드러났다. 그 와중에서도 이우진(유지태 분)이 보여준 치밀한 복수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힘이 아닐까 한다. 이우진의 복수 계획과 비교하여 [아가씨]에서 보았던 것은 코우즈키 백작과 그의 저택이 가진 생김새이다.

%BE%C6%B0%A1%BE%BE.jpg?type=w966 The handmaiden. 제목이 스포일러


영화를 둘러싼 환경, 집, 세트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아가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일본풍'의 배경은 서양적 양식들과 결합하여 [아가씨]만의 세트를 창조해낸다. 그리고 세트는 '효과적으로' 눈에 잘 꽂혀들어 온다. 새로운 하녀 숙희가 저택에 처음 왔을 때 사사키 부인이 일본풍 건물과 서양식 건물이 혼합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굳이 사사키 부인이 저택의 아름다움에 자긍심 혹은 존경을 가진 인물로 설정한다기보다는 환경적 요소를 설명하는 말들로 들렸다. 감독이 그만큼 '일본풍과 서양식'이 결합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히데코가 있는 장면들은 종종 넓은 뷰의 쇼트로 진행된다. 의상이나 세트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특히 히데코의 침실은 보통의 침실, 안락하고 편안한 개인의 공간이라는 느낌보다 히데코를 위한 인형의 집 같다. 숙희가 잠드는 장롱 방? 만큼이나 그녀의 방은 그녀를 가둬두면서 그녀를 꾸미기 위한 의상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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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_image-6.jpg?type=w966 코우즈키월드

코우즈키의 서재는 탐욕적 탐미의 결정체다. 코우즈키의 색정적 욕망은 서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재라는 공간은 무지한 자로부터 뱀으로 지켜진다. 그러나 서재는 '유지', 지식의 공간이 아니다. 기괴한 욕정으로 가득 찬 책들만이 가득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코우스키의 찬미 주의가 중심이 되어 '아름다움'은 집착 받는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위해 히데코는 꾸밈을 받아야만 한다. 탐욕의 정상을 향하는 낭독 시간에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코우즈키의 찬미'를 실현해 내야 한다. 욕망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관음적 시선들 또한 그녀가 감당해야 할 환경적 요소의 일부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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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_image-5.jpg?type=w966 미러링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

코우즈키의 억압이 가득한 히데코의 방에서 두 사람의 정은 깊어진다. 히데코와 숙희의 첫 성행위가 방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통쾌한 도전이다. 갑갑하기만 한 방에서 숙희가 있음으로써 달라지는 히데코의 반응은 숙희가 그녀의 구원자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숙희는 히데코가 갇혔던 서재의 코우즈키 탐욕 시리즈를 물에 담가버리고 망쳐버린다. 영화를 갑갑하게 조이던 온갖 장식들을 부수고 망쳐버린다. 서재를 지키던 뱀을 부수고 히데코와 함께 떠난다. 그래서 숙희는 히데코의 삶(이때까지의)을 망쳐버리는 동시에 그로 고통받던 그녀를 구원한다. 환경을 파괴하고 드넓은 광야로 뛰어가는 장면의 전환은 얼마나 환희에 가득 차있는가.

movie_image-7.jpg?type=w966 약간 더 변태적이고 허약했으면..?


movie_image-8.jpg?type=w966 페이크 듀오


백작은 코우즈키의 젊은 형태이다. 그는 히데코를 사랑하게끔 된다. 그러면서 여자들은 강제로 당하는 걸 좋아한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말이나 하는 그는 가짜 백작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게 그의 모습이다. 자신의 정욕(히데코)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순진하게도). 히데코에게 그렇게 배신당하고 코우즈키에게 잡혀간 그에게 코우즈키는 성관계와 히데코에 대해 묻는다. 엉망이 된 꼴을 한 채로 말이다. 그런 코우즈키와 같이 죽으면서도 자신의 남근을 먼저 챙기는 백작의 대사는 정말이지 찌질함의 극단이다.
이런 찌질한 속내는 그동안 추구해왔던 탐미가 사실 허울뿐인 것들에 불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치명적인 수은의 연기처럼. 사실 코우즈키의 '일본풍' 대저택은 한국인인 코우즈키의 사욕에 불과하고, 백작은 하층민 출신의 가짜에 불과하니 말이다. 화려하고 압도되는 환경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실없는 것들이 되어간다. 아가씨, 히데코와 숙희가 빠져나간 허울뿐인 '세트'는 무너져 내린다. 가짜 탐미주의자, 가짜 백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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