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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Sep 30. 2016

영화 리뷰 [아수라]

목적을 잃어버린 폭력의 난무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악인들, 지옥에서 만나다.' 영화 [아수라]가 지향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불교에서 육도 중 하나인 아수라도에서는 항상 싸움이 존재한다. 의미를 지니지 않고 그저 싸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아수라도의 왕의 이름이 바로 아수라다. 팔이 여섯 개가 달린 아수라는 온갖 무기와 법구를 들고 싸운다. 아수라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아수라'라는 이름을 가진 신은 등장 한다. 힌두교에선 악신으로 조로아스터교에선 선신으로 표현된다. 세 종교에서 나타나는 아수라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힘과 권력을 위한 투쟁, 전쟁이 계속된다. [아수라]의 모든 인물은 권력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살기 위해 더 강해지고 더 악랄해진다. 잔인한 부분들이 많다고 알려진 후기들과는 다르게 잔인함만을 부각하지는 않는다. 몇몇 장면들은 다소 불쾌한 잔인함을 주기도 한다. 눈살을 찌푸리며 보게 만드는 장면이랄까. 하지만 이런 장면들이 온전히 표현되었는가는 의문이다. 영화는 이야기 내부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여 빛나는 몇몇 장면에 유기적인 연결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인물들의 투쟁은 가장 극적이어야 할 곳에서 의미를 잃고 방황한다.

너무 확고해서 잘 연기해도 '황정민 연기 잘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김원해 등 흥행성과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가득한 아수라다. 출연 배우들을 살펴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료는 완벽에 가까운걸?' [아수라]의 배우들은 탄탄하다. 그리고 [아수라]가 개인(특히 한도경)의 감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 충분히 믿을 만한 배우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배우들의 연기는 화면에서 달아오른다. 그러나 다소 부족한 상황 설정과 유기적이지 못한 흐름은 배우들의 연기에 실제성을 부여하지 못한다. 이야기에 따라가지 못하니 단편적인 상황을 '연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몰입이 깨진다.

 [아수라]를 볼 때면 마치 아수라도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혼돈을 느끼게 한 것일까. 폭력으로 점철된, 서로에 대한 투쟁으로 점철된 사회의 이면을 들춰내고 싶었을까. 그러나 [아수라]가 주는 혼돈은 아수라도의 그것과는 다르다. 영화의 느낌은 혼돈보다 혼란에 가까운데 정교한 교란이 사용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흐리는 정도로 남는다. 진정으로 불쾌한 혼란을 주거나 아수라도의 허무함을 표현하거나 하는 하나의 선택이 필요했다. 영화는 어중간한 선택으로 혼란을 야기한다. 덜 익은 누아르가 되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가진 톤앤매너가 제각각인 부분도 한목한다.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카메라에 담는 방식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또한 아쉽다. 장면의 분위기와 감정의 분위기를 다루는 두 영역의 공통적인 아쉬움은 '색감'이다. 영화의 스틸컷에 표현된 진한 색감이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영화의 색감은 평이하다. 누아르가 주는 감각, 색감에서 다소 벗어난 듯했다. 장면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색감은 장르적 특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물론 누아르라고 해서 무채색 톤의 장면들로 점철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아수라]의 장면들은 과연 극 전체의 분위기를 담아낸 것인지는 의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몰입이 깨어진다. 인물의 특성이 명확한 것은 박성배뿐이었다.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확실하게 악행을 저지른다. 다른 인물들은 '박성배도'에 끌려 들어가는 인물들이다. 영화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한도경조차도 박성배가 없다면 존재하지 못할 인물이다. 영화의 모든 사건을 관장하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박성배다. 그러나 박성배의 눈빛만으로 영화를 투쟁이라는 거대한 주제로 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 영화는 다른 인물들을 섞어 넣는다. 그러나 박성배가 만든 환경에서 제각각의 고민을 가지고 악행을 저지르는 형사, 부하, 검사의 모습은 정렬되지 않은 채 뒤섞일 뿐이다. 

그래서 마무리는 아수라장

 생존, 투쟁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개인의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라도 투쟁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을 뿐 투쟁을 표현할 수는 없다. 이는 [아수라]가 주는 혼란의 시작점이 된다. 투쟁의 환경에서 개인이 어떻게 악인이 되어가는가를 세밀하게 묘사해주길 바랬다. 각 개인이 가진 투쟁의 단면들을 묘사하며 두 인물, 세 인물씩 감정을 엮어나가는 방식이 필요했다. 그런 기초 작업 후에 박성배의 눈빛과 한형사의 유리컵을 씹어먹는 장면이 나왔다면 압권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치밀하게 흐르지 않고 과한 취중 분노를 표출하며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은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다. 단지 단편적인 충격으로 남을 뿐이다.

 단편적인 충격은 단지 혼란만을 야기한다. 어떤 새로운 느낌을 주지도, 새로운 영향력을 선사하지도 못한 채. 영화의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다소 '상업적'으로 느껴졌다. 충격적인 장면 몇몇을 넣고 빛나는 연기 장면 몇몇을 삽입한 그저 그런 영화. 정우성과 황정민을 비롯한 유명 배우들을 적당히 버무린 누아르에 불과하다. [아수라]는 지금의 결과보다 더 강렬하고 더 허무할 수 있었다. 아쉽다. [아수라]는 그렇게 인상적인 장면을 몇몇 남긴 인상적이지 못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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