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자백]
'영화 ‘자백’은 멀티플렉스 개봉을 위해 1만 7261명의 후원인이 뜻을 모았다. 다음 스토리 펀딩을 오픈해 80일 동안 기존 목표의 2배가 넘는 4억 3427만 6천 원의 모금액을 기록했다.' -서울신문
영화 [자백]은 제 17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멀티플렉스 개봉을 위해 스토리 펀딩을 진행했고 목표치의 2배가 넘는 모금액을 모아 10월 13일에 개봉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제작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이고 주제는 영화의 제목과 같다. 전 MBC [피디수첩], 최승호 프로듀서가 감독과 영화의 얼굴을 맡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탐사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뉴스타파의 정체성처럼 제작된 영화는 '간첩 조작 사건'을 집요하게 뜯어본다.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과 만나 말 한마디, 사과 한 마디를 요구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무시뿐이다.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린 탈북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삶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한 '자백'을 듣는다.
최승호 PD는 언제나 자신의 발로 뛴다. 그는 40개월 동안 40년 전부터 이어진 간첩 조작 사건들을 탐사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시작한 사건 추적은 2012년 탈북자 한종수 씨의 사망 사건으로 이어진다. 한종수 씨 사망 사건은 한종수 씨가 탈북자로 한국에 입국하여 국정원 소속 기관인 종합신문센터에서 간첩 여부에 대해 질의를 받으며 생활 중 간첩 사실을 인정하고 자살한 사건이다. 두 사건을 주축으로 [자백]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백]은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한 '장편 시사프로그램' 같다. 최승호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PD수첩]의 느낌이 가득했다. 다큐멘터리적, 영상적 의미를 담기보다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포지션을 취한다. [자백]은 의도적으로 사실들을 배치한다. 진실들은 배치를 통해 의미를 확립해나간다. 최승호 감독은 PD로서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여 진실을 통해 사람들을 분노케 만든다. 얼토당토않은 진실들은 모여 공분을 산다. 그리고 화면 속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은 분노에 무게를 싣는다.
기억이 안 납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삶의 오랜 시간을 침해당해왔다. 피해자 일부는 40년이나 옥살이와 법정공방에 시달려야 했고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 무엇이 그들을 위태롭게 하는가. 휴전 중인 국가에서 목숨을 걸고 전향한 그들에게 어째서 평화가 아닌 전쟁이 오는가. 어째서 그들은 간첩으로 만들어졌는가. 질문들에 의문스러운 물음표가 아닌 딱딱한 마침표가 붙는다.
[자백]을 본 관객을 어우르는 반응은 아마 '분노'일 것이다. 최승호 PD는 다소 의도적으로 사실들을 배치하고 분노라는 감정을 엮어낸다. 특히 관련 인물이 화면에 등장할 때 질문에 대한 반응을 끝까지 담아낸다. 또한 이와 대응되게 피해자가 지쳐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이나 피해자의 묘지로 화면을 길게 채운다. 분노라는 명확한 반응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표현은 '다큐멘터리스러운' 화면 전환에서 멈추지 않는다. 화면을 가득 가리는 검찰청 건물에서 줌-아웃할수록 보이는 주택가가 보인다. 최승호 PD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영상일까.
[자백]은 당당하다. 그들이 포스터에 내놓은 여러 문구들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을 바꿔라', '이제 그들에게 들어야 할'과 같은 표현들을 보라. [자백]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밀어붙인다. 최승호 PD가 보여주는 모습, 그의 끈질긴 탐사 취재가 지향하는 바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국정원'을 위해 영화의 모든 총알들이 준비된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며 '이런 이야기가 진실이라니'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사건에 관련된 검사, 국가정보원 직원, 과거 중앙정보국 직원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영화 못지않다. 차분하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모습은 황당을 넘어서 분노에 이르게 하는 영화적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승호 감독이 의도한 장치. 그러나 불행히도, [자백]의 사건은 실제 사건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영화를 볼 때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 채 분노하고 있는 자신을 잠시 진정시키길 바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을 차용한 이 사회고발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진실'들을 비난하지 말고 받아들이길 바란다. [자백]에 곁들여진 다소 명확한 입장과 태도에서 조금 떨어져 [자백]을 지켜보길 바란다. 그리고 되물어 보자.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사건들이 실로 일어난 일들이라면, 그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어보자. 혹 대답 준비를 마쳤는가? 그렇다면 듣고 싶다, 당신의 '자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