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나, 다니엘 블레이크]
처음이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때, 어떤 영화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이 영화가 켄 로치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듣고서도 그랬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갈 때쯤 저 제목은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혹자는 [내비게이터]와 비슷한 이 영화를 ‘노동자의 영화’라 칭하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단지 노동자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노동자 이전의 시민, 시민 이전의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I’를 내세운다. 그리고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니엘은 목수를 생업으로 여기던 50대 후반의 남성이다. 공업의 도시였던 뉴캐슬에 살고 있으며 심장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어서 질병 수당을 받으려고 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간단히도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켄 로치 감독이 파고드는 것은 ‘목수’, ‘50대’, ‘뉴캐슬’, ‘질병 수당’의 사이사이이고 짧은 문장으로 압축된 다니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다니엘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탐닉한다. 그가 자신을 위해 사회의 시스템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순간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암전 위로 소통하지 못하는 대화를 주고받는 다니엘과 ‘의료전문가’의 통화를 보여준다. 암전은 1시간 50분가량의 통화를 기다리던 장면과 인터넷으로 수당을 신청하는 장면에서도 사용된다. 그 긴 시간 동안 다니엘은 최선을 다하지만 ‘시스템의 벽’에 좌절한다. 암전은 시간의 흐름을 이어주면서 관객을 답답하게 조여 온다.
인물들의 얼굴이 가득 찬 클로즈업과 미디엄 숏을 오가며 영화는 계속 다니엘의 삶을 따라다닌다. 여전히 시스템 앞에 실패하고 ‘실패로 규정지어지는’ 그의 삶은 관객을 분노케 한다. 켄 로치 감독은 두 장면을 통해 이 분노를 강력한 메시지로 승화시키는데 그중 한 장면은 케이티가‘푸드 뱅크’에서 ‘쇼핑’을 하는 장면이다. 마치 대기자 한 명 한 명을 훑듯 카메라는 대기줄을 따라가다가 ‘푸드 뱅크’ 안으로 들어간다. 시스템의 경쟁에서 소외받은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모인 장소에서 개인들은 인간다운 배려를 받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케이티는 무너진다.
앞부분에서 계속해서 실패해온 복지와 시스템은 ‘푸드 뱅크’에이르러서야 겨우 케이티에게 도움을 준다. ‘쇼핑’은 그녀에게 인간적인 삶을 제공한다. 이는 단지 물질적 도움만이 아니라 그녀의 초조함과 처절함을 감싸 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미가 넘치는 이 공간에서 케이티는 ‘참지 못한다’. 다니엘은 그런 케이티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라 말해준다.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자신의 메시지를 확고하게 심는다. 먼저 소외받는 이에 대한 도움은 필요한 것이며 또한 그 도움의 과정에서 그들의 자존심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말이다.
다른 승화의 장면은 다니엘의 선언 장면이다. 다니엘은 공공기관의 벽에 ‘IDaniel Blake’로 시작하는 ‘낙서’를그린다. ‘굶어 죽기 전에’라는 직설적인 표현과 구린 통화대기음을 바꾸라는 유머까지 담긴 이 낙서는 명백한 ‘선언’이다. 이는 ‘목수’, ‘50대’, ‘뉴캐슬’로 분류되고 규정지어지는 수동적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난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사람, 다시 말해 능동적 정체성을 가진 주체임을 공언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허용할 만한 ‘공공질서의 어김’,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시스템을 고발한다. 영화는 숙련된 목수, 성실한 사람이자 꽤나 정의로운 인물이 공공질서의 부당함을 틈을 통해 폭로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메시지가 ‘실질적임’을 강조한다.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의 메시지가 현실에 와 닿게끔 하는 방법으로 리얼리즘을 차용한다. 작위적인 상황이지만 인물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그것을 사실처럼 묘사함으로써 현실에서 드러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폭로한다. 그리고 켄 로치의 리얼리즘이 독특한 것은 그의 방식에는 리얼리티가 섞이는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은 비전문 엑스트라를 영화에 집어넣는 식이나 ‘이안 덩컨’ 같은 실제 인물을 거론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리얼리즘이란 방식 속에 리얼리티(사실, 현실)적 요소를 삽입하는 것이다.
삽입된 리얼리티는 리얼리즘의 현실성, ‘현실스러움’을 살리면서 이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말하는 문제들을 여전히 ‘현실적인 것’에 머물도록 한다. 또한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 분노와 감동은 영화 안의 인물들과 관객들 스스로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맺도록 한다. 이를 통해 켄 로치의 영화는 현실적인 문제에 던지는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영화는 현실 참여를 하고 관객들은 그 지지자들이 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다니엘은 결국 시스템에 대한 싸움을 마치지 못한 채 끝을 맞이한다. 인간들이 만든 시스템에서 인간들이 소외되는 현상을 끝맺음 짓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다니엘을 위한 송사에서 그가 지켜온 가치가 아직 남아있음을 강조한다. 다니엘이 케이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은 그저 옳은 일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