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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27. 2021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진짜 무서운건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어느 코로나 시대의 겨울 오후, 한창 기말발표를 하고 있던 학기 말의 학교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한 친구의 형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그 형은 학교 졸업생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형이 확진 판정을 받은 그 친구는 며칠 전 주말에 집에 다녀왔다. 그 주 주말이 집에 돌아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집에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함께 생활했다. 그 친구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우리가,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수도 있었다. 열이 나는 친구는 없었지만, 무증상 감염자가 수두룩한 와중에 우리도 그중 하나일지 몰랐다.

선생님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그 친구는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어안이 벙벙한 우리는 마스크를 두 겹씩 쓰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손소독제를 돌렸다. 우리가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니.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기말발표를 하니 마니 이야기가 오가고 얼마 뒤 기숙사로 돌아가 각자의 방에서 마스크를 끼고 머무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간 친구의 검사 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그 친구는 격리되었고, 우리도 기숙사에서 나올 수 없었다. 검사 결과는 다음날에 나왔기 때문에 불안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한창 하고 있던 기말발표도 언제마저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침대에서까지 마스크를 끼자니 몹시 답답했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늦게까지 코로나 후유증을 검색하다 눈을 감았다.

가장 두려운 건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가 이렇게 내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하루 1,000명이 확진되지만 그건 수도권 얘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집도 다 시골 도시니 상관없을 줄 알았다. 저번 주에 집에 가면 안됐었다고 그제야 후회가 됐다. 집에 가는 당일까지도 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며 말이 많았다. 사실 너무 집에 가고 싶었고 별일 없을 것 같아서 답답하기만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확진된 건 처음이었다. 코로나에 걸리면 겪게 되는 힘겨움은 남 일이었다. 걸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손가락질당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마스크를 끼고 밖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걸리는 사람들은 참 운이 없다고 여기고는 끝이었다. 설마 내가 걸릴까 생각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사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설마 내가 걸리겠어? 그러면서 삼삼오오 모였다가, 먹으러 갔다가, 놀러 갔다가 어? 하게 되는 거겠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고 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아는 사람 한 명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이 더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코로나가 정말 내 곁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프기 싫었다. 죽기는 더욱 싫었다. 우리같이 건강하고 젊은 사람은 코로나에 걸려도 1년만 고군분투하면 다시 멀쩡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후유증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만성피로와 집중력저하부터 폐 손상으로 인한 호흡곤란, 조기 치매, 탈모까지…. 잘못하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했다. 무서웠다.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혹시라도 내가 걸린다면.

다음날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시간을 나누어서 기숙사별로 먹었다. 다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마스크 속 간지러운 얼굴을 긁으며 생각했다. 지금 와서 이렇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지금껏 같이 씻고 한방에서 자는 생활을 했으니 만약 그 친구가 확진되었다면, 우리는 다 끝장 아닌가.

그 친구가 양성판정을 받으면 우리 학교는 잠시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며 뉴스에 나오는 건 아닐까? 금산사람들이 우리 학교를 몹시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은거냐고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고…. 코로나 걸린 학교라고 유명해지면 어떡한담.

후회의 눈물을 흘리던 중, 잠시 거실에 나갔던 친구가 방으로 돌아와 말했다.     

언니, 이거 다 해프닝이었대요.     

엥?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질 못했다. 거실이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더니 기숙사에 있던 사감 선생님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셔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이거 다 착각이래! 우리 아니래! 확진 아니래! 와!!!     

잠시 뒤, 무슨 일인지 이해 할 수 있었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던 형이 이름 표기 착오로 사실은 확진자가 아니었다. 혼자 격리되어있던 그 친구도 밀접접촉자가 아니었다. 우리도 혹시 코로나에 걸렸을 까봐 덜덜 떨 필요가 없었다.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아 확진자를 대량 방출한 비인가 교육시설로 욕먹을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허탈함과 황당함이 지나간 후엔 안도감이 찾아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번 혼쭐이 난 뒤로 코로나 확진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전과는 다르게 들렸다. 어쩌면 저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저 사람도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것 같았고, 운이 안 좋았나 보다 하는 생각도 했다.

이 해프닝 중 가장 소름돋았던 건, 격리된 친구와 같은 기숙사를 쓰는 친구들을 다른 기숙사를 쓰는 친구들이 배척하는듯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장난스러웠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좀 떨어지라는 말을 들은 친구들에게는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코로나는 인간의 업보라는데, 지구 온도가 높아져 녹은 빙하속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수두룩하다는데, 코로나백신을 모두 맞아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의 시대에 도착했고 뒷걸음질은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인간문명이 멸망한다면 진정한 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로 인한 싸움과 갈등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상상했다.          




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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