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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11. 2021

지옥에나 떨어질 앱

스마트폰 사용 제한 앱을 깔아본 적 있으신가요?

 

스마트폰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 나 또한 모부에게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초등학생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쟁취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잘 사용하겠다는 맹세에 가까운 약속을 구구절절 종이에 글로 써서 제출하고(하루 몇 시간 사용할 것이고 게임은 허락받고 깔 것이며 규칙을 어기면 즉각 반납하고 어쩌고저쩌고) 눈물 넘치는 호소 끝에(아아아아아아아! 나만 없다고!!) 내가 스마트폰을 갖게 되는 것은 확정된 듯했다. 


기쁨에 겨워 싱글벙글한 내가 방심한 사이 엄마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굳은 얼굴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 잠깐 사이에 스마트폰이 성장기 아이들의 전두엽 활성화를 망친다는 영상을 보고 온 것이었다. 내 전두엽을 위해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재고 해 보겠다고 했다는 말에 나는 엉엉 울었고, 엄마는 스마트폰을 갖고 싶다면 스마트폰 사용과 상충하여 전두엽에 좋은 영향을 끼칠만한 무언가를 하라는 조건을 이미 무더기로 쌓인 조건언덕에 하나 더 올려놓았다. 


엄마가 제시한 조건이란, 하루에 독후감 하나를 쓰라는 것이었다. 공책 한 페이지를 성의 있는 글씨체와 성의 있는 내용으로 채워야 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독후감도 나쁘지 않은 숙제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하루에 한 페이지를 쓰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이 걸린 순간부터 독후감 쓰기는 ‘독’자만 들어도 스트레스성 비명을 지르게 하는 끔찍한 과제가 됐다. 


나는 독후감을 매일, 그것도 공책 한 페이지 분량으로 써야 한다는 압박에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저 즐거움과 감동, 혹은 깨달음의 시간이었던 책 읽기는 독후감을 위한 밑 작업이 되어버렸다. ‘제로니모와 환상모험’ 같은(내 기준에 해리포터와 맞먹었다) 재밌는 책만 읽고 싶었던 어린이-청소년은 독후감에 쓸만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덜 재밌는 책도 읽어야 했다. ‘재밌었다.’ 라는 문장만 쓸 수는 없었으니까.


거기다 엄마는 내게 어떤 앱을 깔게 했다. 그 앱의 리뷰 칸에는 고통받는 어린이_청소년들의 단말마와(이 앱 만든 사람은 악마가 틀림없다) 보호자들의 만족스러운 평가(..^^)가 4대 1의 비율로 남겨져 있었다. 

그 앱의 용도란 보호자의 핸드폰과 어린이-청소년의 핸드폰을 연결해서 보호자가 어린이-청소년의 핸드폰을 자기 것처럼 휘두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앱이었다. 엄마가 정한 게임 앱이나 웹서핑 앱은 시간제한이 걸려 몇 시간 이상은 쓸 수 없었고 아예 핸드폰을 켤 수도 없게 잠기기도 했다. 나는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거기다 그 앱은 내가 어떤 사이트에 들어갔고 어떤 단어를 검색했고 어떤 페이지를 열어봤는지까지 고대로 까발렸다. 나는 진지하게 이건 인권침해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성년자라고 이런 부당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이 찢어먹을 앱을 개발한 개발자는 확실히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했다. (인정한다. 나는 아직도 이 앱에 악감정이 있다.)


나는 점점 독후감을 대충 쓰거나 안 쓰기 시작했다. 독후감은 빚처럼 쌓였다. 빚후감은 밀릴 대로 밀려 밀린 빚을 다 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엄마는 내게서 스마트폰을 아주 압수할 만큼 모질지는 못했으니(정말 다행이었다) 내게 부여된 극악한 조건도 점점 완화되었다. 나이를 더 먹으면서 그 앱도 지울 수 있었다. 


엄마의 관리 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만큼 열심히 나이를 먹어 즐겁게 스마트-인생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심지어 아빠 전화번호까지 아리송해했다. 생판 남도 아니고 가족의 번호를(그래봤자 본인 빼고 둘밖에 없는데) 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나머지 내 전화번호를 직접 입력할 일이 없어 잊었다고 변명했다. 이렇게 괘씸할 수가. 나는 순종적인 자식은 아니었고, 뒤끝도 길었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지난 한을 풀듯이 엄마를 마구 갈궜다.


나한테는전두엽에유해하다고하루에독후감하나씩쓰라더니엄마는내전화번호를까먹어??? 

독후감은 엄마가 써야겠구먼! 아앙??!


그 후로도 한동안 엄마는 핸드폰에 아주 조금 중독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내 날카로운 지적 한 무더기를 피할 수 없었다. 내 뒤끝은 많이 길었다….


어쨌든, 그 증오스러운 앱과 무거운 숙제로 인해 나는 더 나은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지닐 수 있었는가? 잘 모르겠다. 내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 아빠보다 단호했던 엄마에게 아직도 뒤끝 있게 구는 걸 보면 모부자식 사이를 조금 위태롭게 만드는 부분은 확실히 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리뷰들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분노!) 분노하는 리뷰의 주인과 만족하는 리뷰의 주인 또한 격한 감정을 끓이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보호자들, 모부의 걱정과 염려를 이해는 했다. 중독사례는 가까이에 어른거리고 믿음이라는 신뢰성 부족한 손잡이 하나만 잡고 가기에는 너무 불안하며 통제의 효능은 확실해 보이니까. 보호자의 후기들도 모두를 위한 선택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엄마도 그 앱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으니,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나의 통곡소리에도 강경했으리라. 어쩌면 내가 보호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나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는 소중한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굳은 결심을 하고 그 앱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만 이해했을 뿐 납득하지는 못 했다. 그때 내게 전두엽 이야기는 암만 봐도 과장처럼 느껴졌고 하루에 독후감 하나씩이라는 건 정말 가혹한 대가였다. 엄마와 나는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했던 걸까. 엄마의 우려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을 찾아서 진정한 합의를 봤더라면, 지금까지 내가 엄마의 핸드폰 이슈가 생길 때 마다 입술을 꿈틀거리는 일은 없었을까. 


(아니다. 나는 그래도 번뜩이는 눈으로 엄마를 노려봤을게 분명하다...)     




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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