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 남자친구 애로배우 같아

내가 만난 남자들(4)

by 애랑


숨이 턱 막혔다.


현실감이 사라졌다.


-... 우리나라는 야동이 불법이잖아.

- 아니야 성인물 자체는 있어.

-... 링크 보내줘


눈에 보일 정도로 바들거리는 손은 제대로 휴대폰을 누르지도 못했다. 친구가 준 링크에서 예명을 확인하고 다시 구글링을 했다. 애로배우 00을 치자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내가 아는 그였다.

아니 내가 모르는 그였다.


오빠의 영상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영상은 업로드 순으로 있었다. 가장 최근 업로드 된 영상은 삼일 전이었다.


영상은 나랑 만나던 기간 내내 새로 업로드 됐다. 1달에 2-3편이 올라와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결제를 했다. 영상을 봤다. 조잡한 동영상 속 오빠가 여자를 주무르고 있었다. 나랑 데이트할 때 입었던 옷, 내가 추천해 준 헤어스타일, 나를 부르던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왜 사람이 미치면 웃는지 알았다. 웃음인 듯한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평일에 저 짓거리를 하고 주말에 날 만나 사랑을 이야기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매 순간 날 속이고 있었으면서 나랑 결혼 가치관이 안 맞는다고 나보고 노력해 달라고 했던 게 믿기지 않았다. 좋은 추억이라며 보내주려던 마음이 난도질 쳐졌다. 내가 사랑한 날보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고생했던 4개월이 억울했다. 밤새가며 관계를 개선하려고 방법을 찾으며 피폐해지던 내 노력이, 후회하지 않으려고 갈림길 앞에서 최선을 다한 나의 시간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그와의 모든 추억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매 여행마다 내가 원하는 테마로 여행을 짜오고,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곳만 데려다주고, 매일 태워주던 그 모든 순간에 날 속인 거라고? 결혼을 꿈꾸면서 나한테 그걸 언제까지 속이려고 한 거지? 여리고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던 그는 나를 어떻게 속일 수 있었던 거지? 애초에 여린 사람이긴 했던 걸까? 날 만지면서 저 딴짓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저딴 짓을 하면서 나에게 미안했던 적은 없었을까? 날 사랑했다고? 나는 뭘 한 거지?


내가 믿던 오빠는 없었고, 내가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밤새도록 그의 모든 것을, 그리고 내가 믿었던 모든 것을 의심하며 아침을 맞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헤어짐 AS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