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사이에서 헤맨 별
담징과 아비지는 종교와 기술을 교류한 문화교류자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룰 인물은 특정한 기술 없이 오로지 자신을 태워서 두 국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던 외교관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부딪히던 국제관계 속에서 헤매고 고뇌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던 오늘의 인물을 만나보겠습니다!
우리는 삼국 통일의 영웅으로 문무왕과 김유신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승리의 뒤편에는 평생을 적국이나 다름없던 당나라에서 인질이자 외교관으로 살아야 했던, 문무왕의 친동생 김인문(金仁問)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친구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쳐 조국의 방패가 되었으나,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왕자 김인문입니다.
김인문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전쟁과 반란이 끊이지 않는 혼란기였습니다.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당을 방문하는 사신인 견당사(遣唐使)가 되어 처음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후 무려 일곱 차례나 당나라를 오가며 신라 외교의 최전선을 지켰습니다. 그는 말만 잘하는 외교관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에 있을 때는 장군이 되어 백제와 고구려 정벌 전에 참전해 승리에 기여하기도 한 문무을 겸비한 인재였습니다.
하지만 나당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의 인생은 알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듭니다. 어제의 동지였던 당나라가 신라를 삼키려 들자 당 고종은 장안에 머물던 김인문을 감금하고 그에게‘신라왕(계림주대도독)’이라는 직함을 내립니다. 형인 문무왕을 폐하고 동생을 왕으로 세워 신라를 분열시키려는 당나라의 잔인한 책략이었습니다.
김인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거절하면 죽음뿐인 적진 한복판에서 그는 형에게 칼을 겨누는 꼭두각시가 되어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는 당나라의 한반도 분할 정책에 표면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그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평화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순간부터 그는 조국 신라에서 '기피 인물'이자 '정치적 라이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끝났지만, 김인문은 돌아갈 곳을 잃었습니다. 특히나 형인 문무왕이 죽고 조카인 신문왕이 즉위하면서 그의 존재는 신라에 부담이 될 것이기에 돌아가기가 더욱 힘들었을 겁니다.
문무왕은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유언을 남기며 영웅으로 승화되었지만, 김인문은 당나라 감옥과 관저를 오가며 병들어갔습니다. 그는 화려한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매일 밤 서쪽 하늘, 고향 서라벌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을 것입니다.
694년, 그는 끝내 살아서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당나라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시신만이 뒤늦게 송환되어 경주 서쪽 벌판에 묻혔습니다. 그는 삼국 통일의 일등 공신(원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영웅이 되지 못한 채 말년을 타지에서만 보내고 말았습니다.
시대는 김인문에게 너무나 가혹한 짐을 지웠습니다. 형은 빛이 되고 동생은 그림자가 되어야 했던 운명. 오늘, 경주 서악동에 쓸쓸히 남은 그의 무덤을 생각하며 역사책에는 전부 기록되지 못한 그의 고독을 공감하고 친구가 되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