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을 묻는 시대의 거울
성실하게 일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내는 것. 소박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평범한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처절한 투쟁이었다면 어떨까요? 오늘의 작품은 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효율'로만 재단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입니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거대한 환상에 짓눌려 파멸해 가는 한 평범한 가장의 비극을 다룹니다. 주인공 윌리 로먼은 34년 동안 오직 세일즈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린 베테랑 영업사원입니다. 그는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사람들에게 인기만 있다면 성공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 믿었죠. 하지만 냉혹한 자본주의는 늙고 지친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장은 그를 쓸모없는 부속품처럼 해고하고 할부금과 보험료는 숨통을 조여옵니다.
그러나 윌리의 진짜 비극은 그의 내면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찬란했던 환상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는 아들 비프가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 믿으며 자신의 실패를 아들을 통해 보상받으려 하지만, 진실을 마주한 비프는 아버지의 허상을 비웃습니다. 높아만 가는 도심의 빌딩 숲 사이에 갇힌 윌리의 낡은 집은 거대 시스템 속에 고립되어 작아져만 가는 현대인의 초상과도 같습니다.
작품의 절정에서 윌리는 인생의 마지막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죽음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나올 사망보험금 2만 달러가 아들 비프의 새로운 시작을 도울 자본이 될 거라 믿습니다. 평생 물건을 팔아온 세일즈맨이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상품으로 내놓는 이 결말은 인간의 존엄성이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의 가장 잔인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사망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동차 가속 페달을 밟는 윌리의 마지막 모습은 숭고한 희생이라기보다 시스템에 완벽하게 패배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얼마짜리 물건인지를 증명하려 했습니다. 윌리의 장례식에는 그가 장담했던 수많은 인파 대신 가족들만이 단출하게 모입니다. 아내 린다는 "이제야 집 할부금을 다 갚았는데, 정작 살 사람이 없네요"라며 오열하죠.
<세일즈맨의 죽음>은 비극의 주인공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설정했습니다. 아서 밀러는 이를 통해 현대적 비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윌리가 사장의 냉대 앞에서 외친 절규는 인간이 시스템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시대의 아픔을 대변합니다.
작품은 시종일관 묻습니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결정되는가? 성공하지 못한 삶은 실패한 삶인가? 윌리는 오직 사회가 주입한 성공이라는 잣대에 자신을 맞추려다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서늘한 경고장입니다. 그리고 허황된 꿈을 좇느라 정작 소중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을 향한 진혼곡입니다.
"인간은 과일 조각이 아니야. 먹고 나서 껍질을 버릴 수는 없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