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80년대생의 비범한 어린 시절
컴퓨터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교육열이 높지 않던 시절, 더군다나 지방 광역시 변두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보습학원보다는 태권도 학원, 컴퓨터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의 컴퓨터학원은 타자연습이나 GW-Basic정도 배우는 곳이었던 거 같다. 명령어를 입력하면 거북이 모양의 커서가 선을 그으며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 같은 것도 잠시 배웠던 거 같은데, 아마도 CAD류의 초기 교육용 버전이지 않았을까. 물론 대략 5~6개월 차 학생들은 간단한 C언어를 배우기도 했었던 거 같다. 처음 학원에 갔던 날 타자연습조차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알파벳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a'키를 입력하라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강사님은 그 시절의 커다란 플로터 같은 장비로 좌우 사이드에 펀치 구멍이 뚫린 용지에 알파벳을 인쇄해 주시며 암기해 오라셨다.
컴퓨터와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PC게임을 하면서다. 집에 PC가 없을 땐 컴퓨터가 있는 친구네에 놀러 가서 종종 DOS게임을 즐겼는데, 주로 '삼국지3' 정도를 플레이하던 친구는 내가 오면, 격투기 대전 게임을 했다. 삼국지 캐릭터들이 나왔던 거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만의 펜티엄 PC가 생긴 뒤부턴 가운데 구멍 뚫린 검은색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나 플라스틱 3.5인치 디스크에 복사해온 게임으로 본격적으로 즐겼다. 다양한 게임 중에서도 영웅전설, 포인세티아 같은 RPG 게임에 더 빠지게 되었다. 판타지 소설조차 접해보지 못한 어린아이에겐 RPG게임은 엄청난 유니버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금세 몰입하게 되었던 거 같다. 아직도 그 시절이 플레이하던 게임에 향수가 있다.
중학생이 되자 PC통신을 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상대로 게임을 해봤는데 사람들과 소통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그 당시엔 귀했던 이미지나 머드게임, 채팅이 되는 게 새로웠고 가끔 잘 사는 친구네 PC통신을 같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이텔, 나우누리로 대표되는 곧 있을 초기 인터넷 바로 전 시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절 모든 청춘을 사로잡아버린 레전드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와 피파 2000을 매일 즐겼다. 친구나 인터넷상의 모르는 유저들과 모뎀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고1 때는 밤을 꼴 딱 새우며, 하루 8시간을 할 정도로 빠져있었다. 지금은 한 시간만 해도 몸이 피곤한데 그땐 어떻게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플레이했는지..
이시절 난 사랑앓이를 하고 있었다. 첫사랑이자 4년간 짝사랑 한 동창 여자애를 사랑했는데, 밀레니얼 데이였던 1999년 12월 31일에 고백을 했다. 이 이야기 또힌 마치 소설 같아 나중에 따로 글을 써보기로 한다.
다니던 고등학교는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정보화 시범학교'로 지정되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였으나 광역시 변두리에 위치해 그다지 면학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영향인지 이런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게 아닐까? 어려서 게임을 워낙 즐기긴 했으나,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화학'이었다. 이과생이었던 나는 잠재적인 진로를 '화학'전공으로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어른들이 어린아이에게 넌 커서 뭐 될래? 물어보면 대답하는 흔한 '과학자'가 나에게도 유효한 대답이었다. 무심코 참여했던 고1 여름방학 시절 학교에서 진행된 정보화 수업에 참여하며 내 진로는 바뀌게 된다. 집에 있는 PC는 사양이 뒤쳐진 컴퓨터가 되었고, 근래에 나온 게임도 버벅대기 일쑤였다. 마침 방학 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이참에 학교에 가서 게임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클래스에 등록했다. 더군다나 등록한 사람 중에 몇몇은 PC를 공짜로 준다니! 잘하면 게임을 돌릴 새 PC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열심히 선생님을 alt+ Tab으로 속여가며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 어깨너머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하나둘씩 배우다 보니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영어회화 서클 GMP(굿모닝팝스)에 속해있었는데, 서클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모 웹에디터로 허접한 실력이지만 이것저것 만들어 서클원들에게 공유했다. 그런데 같은 클래스들 들었던 한 서클원 녀석이 내 홈페이지를 비웃고 자기가 만든 게 더 멋지다며 한심한 듯 핀잔을 주었다. 문과생인 그 녀석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넘어 인터넷에서 찾은 각종 스크립트 소스와 CSS를 적용하여 정말 그럴듯하게 페이지를 꾸며놓았고, 색에 대한 감각도 나보다 뛰어났다. 열등감에 시작한 학습이었지만, 점점 재밌어 HTML, CSS, Flash, 드림위버까지.. Web페이지 제작에 실력이 붙었다. 이윽고 국민 PC가 보급되고, ADSL 등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며, World Wide Web,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했다.
나는 지난 방학의 '홈페이지 제작' 과정뿐 아니라 방과 후 수업으로도 컴퓨터와 좀 더 친해지게 되었다. C언어도 조금 맛보게 되었고, 컴퓨터,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자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무슨 주제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볼까 고민하다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 당시 신기하게도 삼행시가 인기였다. 지금으로 치면 아재 개그급이지만 그 당시 삼행시는 철학도 담겨있고, 인생도 담겨있었다. 주말 TV 예능프로그램에서 10명 가까운 모든 출연진들이 삼행시를 하나씩 하고 시작하던, 청와대에서 '청와대' 삼행시 공모전을 열던 라떼 시절이었다. 삼행시를 주제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그동안 배워왔던 flash와 Web관련 지식을 총동원하여 '삼행시 나라'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포털에 사이트 등록까지 마쳤다. 어쩌면 대한민국 최초의 유머사이트가 첫발을 내딛게 된 때였다. 삼행시 유행을 타고 엄청난 숫자의 사용자가 유입되었다. 스포츠신문에서는 삼행시 나라를 추천사이트로 소개하였고, 8시 뉴스광장에서는 삼행시 열풍을 보도하며 내가 만든 웹사이트가 소개되기도 했다.(KBS 미디어에 의뢰해서 그 당시 영상을 DVD로 구입하여 소장 중이다) 친구들은 신기해하며 나에게 이런 소식을 알려왔고, 어느새 10만 명 이상의 누적 방문자와 5천 명 이상의 메일링 리스트 가입자가 생겼다. 소식을 듣고 어느 날 국어수업시간엔 삼행시 나라를 화면에 띄워놓고 수업을 진행하시던 선생님도 있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기뻤다. 성취감이란 걸 처음 느끼게 된 거 같다. 내가 생각해낸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노력 끝에 결과물로 제작되어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고마워하는 반응을 보는 게 행복했다. 정보화 시범학교로 지정된 탓일까? 고등학교 2학년이던 우리들 중에는 Web을 나름 잘 다루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중 몇몇 친구는 벌써 외주제작을 해주고 돈벌이를 하던 친구도 있었다. 웹마스터, 웹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 소개되었고, 나 또한 그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또한 POSCO과학콘텐츠 공모전에는 '나노과학'을 주제로 사이트 출품을 해서 상을 받기도 했다. 시간은 어느덧 고3 수험생이 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Web 공부를 더 해서 재능을 인정받아 수시전형으로 대학을 갈까? 일단 수능시험 준비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한 뒤 나중에 꿈을 이룰까? 아쉽지만 꿈은 잠시 나중으로 미루고 열심히 학업에 임했고 스무 살이 되자 컴퓨터공학과 대학 새내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