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의 추억
1.
사회생활 3년차에 마련한 내 첫차는 스파크LPG 중고차였다. 경차인데다가 가스차 그러고도 모자라 가성비 끝판왕이라는 스틱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중고차 거래사이트에서 해당스펙으로 검색해봐도 전국에 열대 남짓 검색되는 구하기 쉽지않은 차였다. 덕분에 한번 가득 주유하면 600KM를 달리는 놀라운 연비를 보여줬다.
문제는 운전실력이었다. 운전면허를 딴지 8년여만이었고 장롱면허였다. 인수하는 날도 중고차 딜러가 회사로 차를 가져왔는데, 운전석에 앉는걸 주저하는 내모습을 보고 차상태를 같이봐주겠다며 따라와준 선배가 대신 운전석에 올랐고 회사 주차장을 한바퀴 돌아보더니 괜찮다는 사인을 주기도 했다.
초보 운전자가 거쳐야 하는 여러 통과의례를 거치고 간신히 출퇴근 운전에 익숙해져 갈 무렵 이제 슬슬 교외로 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 휴가이기도 했고, 약속도 없던 터라 가까운 경기권 산에 올라 서울 야경이나 구경하고 올까? 하는 계획이 섰고 이럴때 바로 쏘라는 마이카 오너이니 곧장 짐을 챙겨 나갔었다.
경기 동부권의 어느 산을 목적지로 정하고 마침 산사가 있길래 네비를 세팅하고 출발했다. 신나게 음악을 들으며 휴가의 기분을 만끽하다 이윽고 산 입구에 도착했고, 이제 몇분만 오르막으로 달리면 내가 원하는 멋진 뷰가 펼쳐질게 분명했다.
수동기어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경사에 취약하다. 그것을 모르는 내가 아니었다. 불과 한달전 강남역 국기원근처에서도 한번 홍역을 치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모든게 완벽했고 야경을 보는 내모습이 드라마에 종종 나오던 장면과 비슷하리라는 예상까지도 했다.
차는 순조롭게 올라갔다. 3단기어를 넣고 가던 차가 2단기어로 바뀌고.. 이윽고 점점 힘이 딸려서 속도가 줄었다.
'어라 1단기어로 올라가야하는건가?'
늦어지는 속도를 만회하기위해 다시 저속기어로 변속했다. 그리고 풀악셀을 밟게되었고 엔진에 굉음이 났다.
' 아뿔사 변속하는게 아니었는데..'
차는 계속 속도가 줄었고 이내 아예 멈춰버렸다. 수동차라서 두어번 시동도 꺼지기도 했다. 그러다 뒤로 밀리지 않으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순간부터 정신이 번쩍들며 공포감이 느껴졌다. 더욱 난감한건 산을올라가는 이길의 폭은 차가 1대밖에 지날수 없는 너비였다. 살짝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더니 뒤로 밀려 다시 브레이크를 깊게 밟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차를 돌려 다시 내려가고 싶었으나 길의 폭이 좁아 불가능했다.
'어떡하지 나 이러다 죽는건가?'
온갖 무서운 생각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억울하기도 했다.
2.
'119를 불러야 겠지? 아 창피해'
죽을수도 있다는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창피함이란 감정이 몰려왔다. 신기했다.
' 자 정신차려, 차분히 생각해보자'
차를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공터가 있으면 돌려서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폭이 좁아 그럴수 없으니 일단 조금 후진해서 내려가면서 그나마 폭이 넓은길을 찾아야 했다.
무서웠다. 밀려서 안멈추고 계속 가버리면 어쩌지?
그래도 여기에 계속 이러고 있을순 없으니 슬슬 차를 움직였고 넓진않지만 그나마 폭이 여유가 있는 길에서 차를 돌릴수 있을거 같아 멈춰섰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놓고 차를 나와서 45도 경사에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내차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길의 폭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했다. 보통의 길보단 넓었지만 그건 콘크리트 포장길이 넓은게 아니고, 옆에 산길이 조금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길에서 차를 돌려 내려오려다 자칫 잘못하면 산에서 차가 떨어져 사고가 날수 도 있을것 같았다.
차를 돌릴것인가 말것인가, 119를 부를것인가 말것인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직접 돌려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혹시 모르니 가족들에게 연락을 미리 해둘수 있었을텐데 걱정하실까봐 그러지 못했다.
3.
나는 결국 운전석에 다시 앉았다. 첫차를 운전한지 2달도 안된 초보운전자의 큰 결심이었다. 핸들을 잡고 심호흡을 한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치치치징'
시동이 걸렸고, 사이드기어에 손을 가져가 힘을 주어 기어를 풀었다.
아직 내 발은 브레이크를 정말 꽉 밟고 있는 상태였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