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가입인사와 등업제도는 이제 그만
요즘 신차를 구매하려면 차종에 따라 1년 이상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패밀리카로 새로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전부터 신차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정보탐색을 위해 요즘에는 카페 가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유튜브 영상에서 해당 차종의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서 딜러 서비스 수준을 확인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곧장 브라우저를 열어 '***동호회'를 들어갔다. 활성화되어 있지 않을 것 같았던 카페에는 의외로 새 글이 많았다. 딜러들에게 견적을 받는 게시판 페이지도 눈에 띄어 이동했다. 카페 멤버로 가입하기 전이라서 글쓰기 버튼이 나타나지 않았고, 가입을 위해 페이지를 이동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날 반겼다.
"게시글 4개, 댓글 4개를 작성하시면 자동 등업 됩니다"
회원들은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주로 등업용 게시판이라고 부르는 곳에 영혼 없는 가입인사며 계약 인증 등을 해대고 있었다. 매일 새로운 글이 작성되고, 많은 댓글이 달리는 활성화된 커뮤니티였고, 검색엔진 입장에서 보면 이 사이트는 정말 핫했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어떨까? 등업을 위한 글들이 뒤섞인 카페 게시글엔 깊은 정보성 글보단 짧은 글과 무의미한 댓글들이 많고, 올라온 글들의 신뢰성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을 닫았다.
바로 카카오톡을 열어 오픈 채팅방에서 커뮤니티를 검색했다. 74명이 들어가 있는 '***차주방'이 보였고, 다행히 입장 코드 없이 접근이 되었다. 대신 입장하자마자 방장의 '공지를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따라붙었다.
양식에 맞춰 대화명을 바꾼 뒤 궁금한 사항을 질문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활발하게 메시지를 주셨다. 어떤 분은 내가 원하는 답변을, 또 어떤 분은 '공지를 자세히 확인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상단의 공지사항을 다시 펼쳐 찬찬히 읽어보니 입장한 후 10분 동안은 질문 금지를 자율 규칙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질문만 하고 방을 나가버리는 질문튀?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자율 규칙을 엄밀하게 지킬 수도 없으면서 구성원들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고 있었다. 운영진과 기존 유저들은 어떻게든 자율 규칙을 지키기 위해, 새로 들어온 유저는 즉시 대화할 자유를 침해받으면서 말이다.
즉시 궁금증을 해소하더라도 사용자가 나가지 않고 계속 이 방에서 정보공유를 해야지라고 생각이 들게끔 양질의 정보가 공유되는 생태계가 먼저 구축이 되어야지 이런 방식으로 해서야 쓰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오프라인과 닮아있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오프라인과 닮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경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얼마 전 '네이버 카페 등업 뚫기'라는 게시글을 보다가 카페에 멤버로 가입하지 않고 게시글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크롬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 이 프로그램도 카페 게시글 작성 시 멤버에게만 공개하도록 작성하면 역시 볼 수 없다.
1020세대들도 이 문화를 받아들일까?
이들에게 네이버 카페란 3040이 느끼는 네이버 밴드 같지 않을까?
네이버 생태계에 장악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커뮤니티의 선택지..
그리고 윗세대가 좋아 아하는 커뮤니티의 유형..
3040이 즐기던 다음, 네이버 카페는 모바일 시대 바로 전까지 흥 했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구분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과 아카이빙이 모두 가능했던 좋은 수단이었다. 요즘 단톡방에서 실시간 소통하는 것처럼 채팅 기능도 있었다. 예전에 시간을 정해놓고 단체 채팅을 하는 '정팅'이라는 것을 3040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네이버 카페의 대안이 등장할까?
여기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팬데믹 이후 10대들의 카페 사용이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기사)
팬데믹 이후 디지털 소통과 아카이빙이 더 부각되자 학교나 학원에서 우후죽순 카페를 개설했고 그곳으로 학생들을 락인시켰다. 카페를 개설한 주체들은 대부분 3040 이상의 선생님들일 것으로 추측한다.
마치 동호회 운영진인 4050이 네이버 밴드를 개설하고, 2030들이 초대당해 사용하던 몇 년 전 모습과 닮아있다.
얼마 전 하루 일기라는 대규모 마케팅을 진행하며 블로그에 Z세대를 잡아놓기 위한 네이버의 움직임이 있었다. 캠페인의 초기 참여들 대부분이 어뷰징으로 체리피킹 하던 게 이슈가 되긴 했지만, '크리에이터에게 미래가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서의 개선이 없다면 몇 년 뒤 제2의 싸이월드가 될지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관점이 있다. 영혼 없는 가입인사나 등업을 위한 쓸데없는 댓글들, 결국 아무에게도 어떤 정보도 되지 않을 글들이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면 어떤가?
불필요한 메일을 지우고 광고성 스팸 메일을 차단하는 이른바 ‘디지털 탄소 다이어트 챌린지’ 캠페인을 시작한 얼마 전의 사례도 있다. 메일함을 비우면 데이터 센터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캠페인 취지이다.
Z세대 이하의 커뮤니티 문화는 어떻게 가게 될까? 흥미로운 주제이고, 정말 궁금하기도 하다.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이런 기회를 언급한 Tae Kim의 블로그의 글도 공감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방향을 잘 잡는 서비스를 내놓는 기업이 큰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면 혹은 생성하고 싶다면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면 어떨까?
- 비즈니스, 전문자료형 : 노션 + 슬랙/디스코드/카카오톡
- 취미, 친목, 일반자료형 : 노션 + 카카오톡
물론 정보가 얼마나 희소성이 있냐, 가치가 있냐에 따라 유료 멤버십을 붙일 수 있다면 별도 사이트를 구축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