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봤던 TV 프로그램 '어쩌다 사장'에서 가게에 찾아온 손님 네 명이 대게라면을 먹는 신이 있었다. 손님들은 모두 10대 소년들이었고, 동네 친구들이었다. 대게라면이 서빙되어 이윽고 먹방이 시작되었는데, 이들 중 누구의 라면에도 대게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음식에 메인 식재료가 빠졌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본업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 불편한 점 중 하나는 조직원들이 불편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편에 둔감하기도 하고, 조직 분위기에 맞추려고 모나지 않게 행동하려는 것도 깔려 있다.
단적인 예가 화장실의 물비누이다. 회사에서 계약한 사무공간 미화를 위한 용역업체가 있고, 화장실 역시 청소 여사님들께서 고생하시면서 항상 청결을 유지해 주셔서 평소 정말 감사하며 이용하고 있다. 다만, 가끔 세면대의 센서로 동작하는 자동 물비누가 안 나올 때가 있는데 이게 내용물이 떨어졌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을 때 이렇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대개는 당장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반대쪽의 물비누를 사용하고 각자 사무공간으로 되돌아간다. 문제는 그 다음번 화장실에 방문했을 때도 여전히 물비누가 한쪽이 안 나오거나 이젠 양쪽 다 안 나오는 경우이다. 이 지경이 되면 이곳을 이용하는 모든 조직원들이 불편을 겪는다.
누군가 나사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도 않고, 이 경우엔 '공유지의 비극'의 딜레마도 포함되어 있기에 더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럴 때 물비누를 채워달라거나 고장 났다고 여사님께 말씀드리거나(하지만 마주치기 쉽지 않다), 신호를 주기 위해 커버를 열어놓는다던지 행동을 취한다. 이렇게 하면 여사님도 뭐가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쓰시기 때문이다.
(가끔 이렇게 해도 모르실 때도 있다)
한두 시간 불편을 겪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어떨 때는 일주일이 지나도 조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조직원의 성향을 의심하게 된다. 이 조직에는 대체 불편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나 말고 있기는 한가?
비단 채워지지 않는 물비누에서 그치지 않고 조직 전반의 일로 생각이 옮겨간다. 조그만 물비누의 불편 하나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동료에게 느끼는 불편을 이야기할까? 팀장, 부장에게 느끼는 불편은 당연히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이런 조직이라면 경영진은 회사를 운영하기 정말 쉬울 것이다.
회사나 회사의 제품 및 서비스에 불편함을 신고하면 리워드를 주는 앱이 등장하는 시대이다. 불편함은 곧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공한 창업기업의 상당수는 창업자 본인이 경험한 불편한 경험에서 비즈니스가 시작된다. 불편을 이야기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혁신의지와 열정이 있는 것이고, 문제정의를 잘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어쩌다 사장'의 그다음 씬에선 다행히 침묵하는 소년들에게 친절히 조인성이 대게를 한 마리씩 늦게라도 서빙했다. 고객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게 있는지, 음식의 맛은 적당한지 등 평소 홀을 관찰하는 습관 덕에 알게 되어 뒤늦게 조리한 뒤 서빙한 것이다. 비로소 소년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해서 화내면 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고단한 직장인들에겐 언제나 응원하는 심정이지만, 서로의 불편함을 쉽게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개선하는 문화가 우리 조직에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 DNA가 스며들지 못한 조직은 병들어 곧 썩게 된다.
당신과 당신의 조직은 불편을 잘 이야기하는 사람입니까?
어찌 됐건 말하기 껄끄러운 나의 불편을 먼저 알고 찾아오는 조인성 같은 해결러는 현실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