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주사를 맞아본 적이 있다면 주사실에서 엉덩이를 까고 대기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환자에겐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알 거다.
반면에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자마자 간호사의 주사기는 내 엉덩이 한쪽에 지체 없이 바로 꽂힌다. 마음의 준비할 시간 따위는 없는 것이다.
어릴 적 편도선염을 자주 앓았던 나, 그날도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었다. 어김없이 주사 처방이 있었고, 주사실에 들어선 나는 익숙한 듯 신발을 벗고 침대에 엎드렸다.
간호사가 오기 전에 미리 엉덩이를 까놔야 하는지 아니면 간호사가 오면 까는 게 매너인지는 성인이 된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한 난제이지만, 여하튼 그때도 깐 것도 아닌 그렇다고 안 깐 것도 아닌 오른쪽 엉덩이를 소심하게 드러내 놓고 있었다.
아 드디어 엉덩이 주사를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아플까'
'간호사는 주사를 맞이 놔보셨던 분이겠지?'
'왜 매번 주사 처방이 있는 걸까? 주사 안 맞고 나을 수는 없는 걸까?'
등등 수많은 내적 갈등을 마주하며, 짧고도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주사실에 들어선 간호사는 이것저것 분주하게 준비하시다 엉덩이만 찰싹 한번 때리고는 그대로 주사실을 나갔다.
'응 뭐지? 뭘 놓고 오셨나? 더 급한 게 있나? 왜 주사를 놓지 않고 나가시지?'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갖다가 다시 생각했다.
'에이 다시 오시겠지, 뭔가 급한 게 있었나 보지'
엉덩이 주사를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이 재개되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10초.. 20초.. 30초.. 1분... 그리고 또 1분
금방 다시 들어올 것 같던 간호사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에잉 이건 뭔가 이상한데?'
주사를 놓으실 때 이렇게 소심하게 엉덩이를 까고 있으면 보통 간호사가 한 번 더 확실하게 바지춤을 내려서 목표물의 시야를 충분히 확보해왔던 것으로 보아 분명히 내 엉덩이에는 주사기가 꽂히지 않은 게 맞았다.
아니 그리고 그렇게 찰싹 때리고 주사를 놨다면 몇 번 문지르다가 나오라든지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 맞다.
3분쯤 시간이 흐르자 나의 기억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주사를 설마 놓으신 건가?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간호사 누나를 불러서 물어봐야 하나? 이제 와서 그러면 창피할 거 같은데'
'에이 어떡하지 어떡하지.. 다시 들어오시겠지?'
하지만 간호사는 주사실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내가 주사실에 계속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의문의 시간은 계속 흘러 이윽고 5분 여가 지났다.
밖에선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렸다. 그중 다음 주사환자가 발생되었고, 주사실로 들어오라는 소리까지 들렸다.
'이건 뭐지, 아직 내가 주사를 맞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 환자가 들어옴 어떡한담!'
주사를 처방받은 그 성인 남자분은 주사실에 들어오시려다, 내가 엎드려있는 걸 보고 살짝 당황하시며 걸음을 돌리셨다.
잠시 뒤엔 간호사가 주사실로 들어왔다.
"어머나 이게 뭐야, 너 왜 아직도 여기 있니?"
다음 환자가 엎드린 채 대기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간호사는 몹시 놀라며 나에게 말했고, 나도 몹시 당황스러웠다.
사실 간호사는 아까 내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주사를 놓으셨다고 한다. 통증이 하나도 없어 주사를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게 오해의 시작이었다.
간호사가 주사를 너무 잘(?) 놓아서 통증이 없어도 문제였다. 환자는 주사를 맞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간호사는 주사를 놓았으니 당연히 몇 번 문지르다 나가겠거니 하고 나가신 듯했다.
이내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주사실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나는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몹시 창피한 일이라 여긴 나는 그 뒤로 그 병원을 다시 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