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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Dec 18. 2023

딸의 일본 여행 즈음_참 부러운 나이

백일백장 글쓰기_13기_아흔아홉 번째 글

     

웬 노란 머리 아가씨가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우리 집에 들어왔다.

“일본 간다더니 일본애처럼 하고 왔네?”

한 마디 했더니, 일본어로 뭐라 뭐라 한다. 말에서 벌써 들떠 있다. 월요일 친구와 함께 일본 여행 갈 생각에 말이다.     



나는 스무 살 겨울을 어떻게 보냈나? 학교, 자취방, CCC 동아리 밖에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친구랑 단 둘이 여행 갈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 단기선교로 일본을 간 적은 있다. 그거야 CCC 동아리에서 간사님과 순장님들과 함께 간 것이니 성격이 좀 다르다. 친구와 단 둘의 여행이라…….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ENFP 성격 유형이기는 하지만, 친구와 함께 여행 가서 무엇을 할지 굵직굵직한 계획들은 세웠다는 걸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어제 들어보니 예산을 세워서 움직이는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보조 배터리를 원래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엄마 배터리 갖고 가니까 돈이 좀 남네요. 엄마 뭐 갖고 싶으세요?”

이쁜 딸이다.

“엄마 생각하지 말고, 친구랑 재미있게 놀다 와.”

면세점에서 립스틱을 사줄 생각이었나 보다. 어떤 색깔이 어울리는지 요리조리 내 입술에 대어 본다. 못 이기는 척, 내가 갖고 있는 립스틱을 입술에 칠해 보여줬다.

“아, 엄마 쿨 톤 아닌 줄 알았는데, 쿨 톤이네.”

지난번에 어디에 가서 자기 피부 톤을 검사했다더니, 웜 톤이 어떻고, 쿨 톤이 어떻다는 말을 했다. 요즘 MZ 세대들의 특징이 딸에게 나타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번에 소논문을 쓰는 게 과제라고 한다. 교육학과에 다니다 보니 관련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해서 제출하는 가보다 했다. 제목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꽤 진지하다. 자기가 적은 걸 빠른 속도로 보여 주는 데 완전 논문 형식을 갖춘 글이었다. 딸이 이런 긴 글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니, 그게 놀랍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딸이 살고 있는 이 삶을 20대의 내가 살 수 있었더라면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사실, 나는 함께 해외여행 갈 고등학교 친구 하나 없고, 일본 여행을 옆 동네 가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는 배짱도 없다. 23살에서 24살이 되는 그때 겨우 짜깁기로 학사논문을 쓰느라 고군분투했던 기억도 있다. 스승의 날이면 딸은 선생님들을 찾아가고 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중학교에 친구들과 약속해서 졸업한 학교에 가기도 했다. 얼마 전 학과(대학) 점퍼를 입고 친구들과 졸업한 고등학교 선생님을 찾아갔는지, 카카오톡 프로필에 남긴 걸 보았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나는 학교 졸업 후 선생님을 찾아갔던 일도 없었다. 아마 나를 가르쳤던 많은 선생님들이 지금 내가 나이가 먹은 만큼이나 세월이 흘렀기에 연세 있으실 것이다. 궁금은 했지만, 행동은 하지 않았다. 딸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딸이 부럽다. 앞으로 딸이 나와는 다른 더 멋진 삶을 살 것을 생각하니 기쁘다. 뭐든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는 실행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친구와 일본여행을 다니며 또 좋은 추억 많이 쌓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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