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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Jun 04. 2024

내 인생, 크레셴도

2022년, 한국 출신 만 18세 청년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세계 3대 콩쿠르에 견줄만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요즘 그의 음악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 있다. 대회에서 수상한 음악뿐만 아니라 최근 연주했던 곡까지 찬찬히 찾아 듣고 있다. 


7살 때부터 피아노학원을 다녔다. 바이엘부터 체르니 40번 연습곡까지.  다른 친구, 동생들은 바이엘 다 치면 체르니 100번 연습곡부터 들어가는데, 나는 30번 연습곡을 들어갔다. 바보같이 쉬워 보여서 굳이 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선생님께 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체르니 30번 연습곡 중 15번은 유난히 다른 곡보다 어려웠다. 그 부분을 치다 그만두고, 다른 학원에 등록했다. 1번부터 14번까지 진도 나가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다시 15번 진도를 나가면 어려워 포기하고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 지금 생각하면 15번을 융통성 있게 넘어가고 16번부터 진도 빼도 되었을 텐데..... 체르니 연습곡으로 콩쿠르에 나갈 것도 아니고. 전체곡을 다 연주해야 할 이유는 더욱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체르니 40번 연습곡을 중간쯤 쳤을 때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야 했고, 더 이상 피아노학원에 다니지 않게 되었다. 피아노 쪽으로 전공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으레 중학교 가면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평생 딱 두 번 콩쿠르에 나갔다. 한 번은 전국학생음악콩쿠르, 한 번은 진주개천예술제 콩쿠르. 5학년 때 나간 전국학생음악콩쿠르에서는 점수대 별로 상을 수여했다. 80점부터 85점은 우수상, 90점 이상 95점은 특별상, 특별상 받은 학생들끼리 경쟁을 통해 대상, 금상, 은상, 동상을 수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85점 이상 90점까지 나왔기에 최우수상을 받았다. 상위 4등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작은 트로피도 받고 나름 선전해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에 감사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나간 개천예술제 콩쿠르에서는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피아노 전공하겠다는 꿈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워낙 잘 치는 애들이 많다는 것을 빨리 알아버렸다. 새끼손가락이 유난히 짧았던 나는 옥타브 치는 것도 어려웠다. 


친정 엄마는 기도하셨단다. 그저 교회에서 반주하는 사람이 되기를. 아마 엄마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기도하셨다면 달라졌을까? 엄마의 기도대로 나는 학원은 그만뒀지만, 중학교 때부터 쭉 교회에서 반주자로 섬겼다. 그래서 피아노 악보 보는 것도 쉬지 않을 수 있었고, 손도 굳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전공하지 않았기에 피아노 치는 게 좋았다. 스트레스받으면 피아노 치면서 날려 버렸다. 피아노 곡을 연주하다 보면 걱정, 고민도 사라졌다. 


요즘 삶을 음악 기호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악보에 보면 여러 연주를 위한 기호들이 나온다. 세기를 나타내는 것, 빠르기를 나타내는 기호 등. 우리네 삶은 악보만큼이나 다채롭다. 어느 때는 여리게, 어느 때는 세게. 어느 때는 빠르게, 어느 때는 느리게. 점점 여리게, 점점 세게. 휘몰아치듯 연주될 때도 있고, 점점 느리게 갈 때도 있다. 어느 때는 쉼표에 늘임표(리타르단도)가 있는 듯 멈춰버린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내 세게 연주해야 할 부분이 나오기 마련이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줘서 연주해야 하는 것처럼, 일상 한 조각 한 조각이 다 소중하다. 어느 하루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처럼 될 수 있기를. 무대에서 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 한 번뿐인 것처럼, 인생도 딱 한 번뿐이다. 다행인 것은 내 인생은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대회가 아니다. 가끔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실수했다고 해서 무대에서 내려가지 않고 끝까지 연주하듯, 포기하지 않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내야 하는 게 인생이다. 


내 인생은 점점 세게, 크레셴도이다. 중간에 어떤 격정의 멜로디, 숨죽여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을지라도. 멈추지 말고, 내 인생의 곡이 마치는 그날까지 잘 연주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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