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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Sep 24. 2023

오랜만의 산책과 가족 외식

백백 프로젝트_13기_100_열네 번째 글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전철을 타고 별내역에 도착하면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려고 건널목을 건넜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산책을 하고 싶었다. 주렁주렁 두 손에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추석이 있는 주간이라 초등 2부 부장 선생님이 주신 선물과 가윤이 어머님이 주신 빵, 같은 순 김경미 집사님이 주신 차 선물세트. 거기에도 모자라 순모임 마치고 남은 간식을 담은 종이 가방까지 총 네 개의 종이 가방을 양손에 두 개씩 쥐었다. 어깨에는 가방도 메고 말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치렁치렁 뭔 일인가 싶기도 하겠다. 순 예배 드리면서 집어 먹은 여러 간식들로 배도 부르고 해서 좀 걸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날씨도 선선해졌다. 그래도 시간이 낮이라 햇볕이 조금은 따가웠다. 길거리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와 들꽃마저 예쁘게 느껴져 사진을 계속 찍었다. 꽃도 초근접 사진을 찍으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색깔도 진하고, 향기마저 묻어 나올 정도로 잘 찍혔다. 산책길을 둘러보며 거니는데, 물가에 청둥오리가 보였다. 폰을 집어 들고 오리가 도망갈세라 조용히 다가가 카메라 앱을 켜고 찍었다. 흐르는 개울가에는 물고기들도 헤엄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징그러웠지만 이 또한 사진으로 남겼다. 집에 거의 다 와갈 때쯤 하얀 두루미도 만났다. 티 없이 깨끗한 두루미가 잘 나올 수 있도록 일단 사진부터 찍고 보았다. 양손 가득 들었던 가방도 바닥에 놓고.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아들이 맞이해 주었다. 두 손 가득 들고 온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꺼냈다. 아들 손에 고래밥을 쥐어주었다. 함박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조금 있으니까 청년부 예배를 마친 딸이 집에 왔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에 있어서, 대학 다니는 지금은 자취를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만 보게 되어 더 반갑다. 식탁에 놓여 있는 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보더니,

“이게 뭐야? 먹어도 돼요?”

라고 말한다. 맛있는 빵을 딸, 아들과 나눠 먹을 수 있어서 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남편은 어디쯤 오고 있나 궁금해서 연락을 해 본다.

“밥이 없는데, 쌀 안쳐 놓을까요?”

내심 오늘 외식하는 부푼 꿈 때문에 물어본 것이다. 내일부터 아들도 시험 보고, 딸도 아들 시험공부 준비시키느라 고생했으니, 어제 얘기를 했었다. 가족끼리 식사하러 가자고 했었다. 이미 배가 불러 고기를 먹기는 그렇고, 간식거리로 느끼한 걸 먹었기에 매콤한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딸도 친구와 자주 갔던 마라탕 파는 식당으로 결정했다. 전에 별내 학습센터 선생님 두 분과 함께 시상금 받은 걸로 먹었던 마라탕이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가자고 했다. 딸은 오픈할 때부터 친구와 자주 갔다고 하니 더 반가웠다. 남편과 아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마라순꼬우’라는 식당으로 걸어갔다. 저녁이라 선선하다. 딸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즐거운 외식을 하게 되어 콧노래도 절로 난다.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손님이 더 몰리기 전에 어서 재료를 넣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릇에 먹고 싶은 재료들을 담고, 마지막에 고기까지 선택했다. 결제는 남편이 했다. 네 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을 담았다. 꿔바로우 작은 것도 시켰다. 그래도 36,000원이다. 가성비 갑이다. 종지에 땅콩소스, 매운 정도를 조절하는 소스 두 가지를 담았다. 딸은 단무지를 담아 왔다. 곧 내가 담은 재료들로 끓인 마라탕이 나왔고, 조금 더 있으니 딸이 담은 재료들로 두 번째 마라탕이 나왔다. 일단 사진부터 찍었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음에도 매콤한 국물을 한 숟가락 먹으니 술술 들어갔다. 안에 들어간 쇠고기도 두말하면 잔소리처럼 야들야들 고소하니 맛있었다. 딸이 전병이라고 하는 것도 시켰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맛있었다. 아들도, 남편도 잘 먹었다. 두 마라탕 건더기를 다 먹어가는데도 아직 꿔바로우가 나오지 않았다. 환불을 해야 하나 싶을 때쯤 드디어 꿔바로우가 나와서 한 젓가락 먹었다. 늘 가던 ‘타오타이랑’ 식당에서 먹는 맛과는 사뭇 다르지만 나름대로 맛있었다. 아들이 잘 먹어서 흐뭇하다. 딸은 다이어트가 좀 필요한데, 그래도 잘 먹는다.







마라탕과 전병, 꿔바로우가 담긴 그릇을 싹 비우고 2차로 배스킨라빈스로 향했다. 깔끔하게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이다. 묵혀 두었던 기프티콘도 쓸 겸 말이다. 가족을 위해 내가 받은 기프티콘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동안 무심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훌쩍 커 버린 딸과 아들의 키만큼이나 세월도 빠르게 흘렀다. 아들도 곧 고등학생이 될 테다. 내일 시험으로 걱정과 고민이 많겠지만,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를. 다만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실력을 뽐내 주기를 욕심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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