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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Nov 01. 2023

정신이 오락가락

회원 집에 두고 온 보조 가방 찾기 프로젝트(쉰두 번째 글)

어제 마지막 회원집에 보조가방을 하나 두고 왔다.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나오면서는 까만색 원래 씽크빅 가방만 갖고 나온 것이다. 그것도 집에 가고 있는 길에 알았다. 다른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부리나케 나오면서 그랬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받으면 장기적으로는 나을 것 같아서 한 집이지만 수업을 받기로 했다. 계속 못하고 있던 수업을 오늘 드디어 일정을 잡아 첫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마저도 집에 도착하니 큰 아이는 자고 있어서 귀여운 준택이 수업만 했다.

보강 일정도 잡아야 하고, 가방 두고 온 집에서 가방도 도로 찾아봐야 한다. 너무 늦었기에 어제 가지 못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서아와 채아에게 톡을 보냈다. 학교 가는 길에 선생님 가방 현관 앞에 두라고. 그럼 찾아가겠다고. 그래서 이후에 서아가 보낸 답을 보지 못한 채 한라비발디아파트로 향했다. 땡큐 50번 버스가 조금 있으니 도착했다. 걸어갈까도 고민했지만, 두통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땡큐 50번 버스 놀이공원 버전을 타고 가는 길. 버스 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친구들이 있는 방에 올렸다. 어디냐고 묻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버스라고 했다. 이렇게 카메라 찍으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정류장이다. 별가람역 출입구로 갈 수 있는 정류장. 내려서 좀 걸어가야 서아, 채아가 사는 아파트가 나온다. 당연히 아침에 톡 보냈으니 잊지 않을 거라 확신하며 말이다. 10동 403호. 현관. 아무리 봐도 내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톡을 열어보니 8시 29분 채아가 톡을 이렇게 보냈었다.

“선생님, 까먹었어요. 어떡해요?”

집에서 나오기도 전에 보낸 톡이었다. 당연히 버스 타기 전에는 봤어야 했다. 바보 멍청이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해서 어머니께 톡을 보냈다.

“어머니, 죄송한데요. 제가 가방을 가지러 403호 왔는데……, 애들이 까먹고 현관 앞에 두지 않고 갔네요.”

어제 보여달라는 한자 교재를 혹시 보지 않았는지도 덧붙였다. 조금 멋쩍긴 해서. 그랬더니 엄마의 답신.

“네? 가방 얘기 못 들었는데…… 어떻게 하죠? 저녁에 내놓을까요? 한자교재도 못 봤어요. 애들이 별 말이 없길래 안 주셨나 했어요. 제가 저녁에 가서 다시 확인할게요.”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렸다. 애들한테는 이미 말해 둔 상태라고. 한자 교재는 설명해 주지 않고 어머니께 보여드리라고 하고 나오다시피 했다. 애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좋다 하면 엄마가 시킬 거 같아 잊어버린 척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어머니의 위의 답변 역시 나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늦게 발견했다. 달코나 라테를 기프티콘으로 구입해서 마시고 나서 말이다. 하는 수 없어서 집에 가기로 결단했다. 버스 타고 가려다가 산책을 즐기려고 걸어가기로 맘먹었다. 40여 분 거리를 걸어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운동을 해도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거니 그냥 시도해 보았다. 네이버 지도 앱으로 지금 위치에서 도착지인 웅진씽크빅 별내센터가 있는 곳까지 길 찾기 서비스를 이용했다. 운동화도 가벼운 걸로 신고 왔기에 걷는 걸음도 가볍다. 한없이 짜증 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모든 근심, 걱정은 내려놓기로 했다. 

도착해서는 벌써 점심시간도 되고 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예전에 먹은 김밥집이 떠올랐다. 가격도 지금 현재 상황에서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런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 두어 바퀴를 돌았다. 시험을 치는 학생들이 어제까지 공부한 내용이 시험지를 보자마자 백지상태가 되듯 말이다. 다행히 ‘여우김밥’ 간판을 찾았다. 지난번에 멸추(멸치볶음과 청양고추) 김밥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이른 김밥집, 여우김밥이다. 메뉴가 적혀 있는 입간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오늘은 뭘 먹지?’

주부들이 늘 하는 고민이지만, 이 고민은 메뉴를 고를 때도 하게 되는 고민이다. 오늘의 나처럼. 김치냄비국수이 오늘 얼큰하게 당겨서 키오스크에 가서 주문했다. 음식이 나올 동안 따뜻한 가쓰오부시 국물이라도 마시려고 그릇에 떠 왔다. 얼마 뒤 드디어 김치나베 가락국수가 나왔다. 막 끓여 나왔기 때문에 뜨겁게 달궈진 그릇. 조심하라며 사장님이 내려놓으셨다. 사진 한 장 남기는 센스! 김치나베 국물 한 모금을 먼저 입에 넣어봤다. 맛나다. 아침 댓바람부터 가방을 찾으러 갔지만 소득 없이 돌아온 나를 충분히 어루만져줄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이어 가락국수도 먹었다. 조그마한 공기에 밥도 주었다. 김치가락국수만 먹기엔 간이 센 것 같아 밥과 함께 제공하는 가보다. 그 밥도 싹싹 비웠고, 곧이어 가락국수도 싹 다 먹었다. 김치나베만 바닥에 조금 깔릴 정도의 양만 남기고.

센터 수업을 마치고, 방문 수업 가기 직전에 다시 서아, 채아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열어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리니 아이들이 벌써 버선발로 나온다. 문에 걸어두었던 가방을 건넨다. 고마운 회원들이다. 가방 안에는 어제 회원어머니께 받은 맛있는 간식꾸러미 봉지와 귤 하나, 우리들 교회에서 발행한 큐티책이 그대로 있었다. 물론 물통과 그날 회원에게서 회수한 채점할 교재까지. 당장 필요 없다 치부해 버리면 이런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어머님의 정성 어린 선물을 두고 다니면 마음이 찜찜했을 것이다. 번거롭지만 찾으러 가길 잘했다. 이러면서 반가운 아이들과 눈 맞춤 한번 더 할 수 있으니. 나를 믿고 신뢰해 주는 어머님들과 회원들이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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