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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Nov 27. 2023

너랑 나랑 세트로 세 식구가 먹는 행복

백일백장 글쓰기_13기_일흔 여덟번째 글

내가 수업하는 지역에 분식집이 있다. 김밥장수라는 식당이다. 처음 이 곳을 알게 된 것은 남편이 내가 수업 마치고 집에 갈 때 멸추김밥을 사갖고 온 날이다. 한 달도 넘은 듯 하다. 알싸한 청양고추 맛이 살아있고, 잔멸치볶음의 진한 향이 입맛을 당기는 김밥이었다. 상호를 보니 처음보는 식당이다. 구멍가게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길 한 쪽 모퉁이에 꽤 넓게 자리잡은 곳이다. 홀도 꽤 넓다. 각 테이블마다 키오스크도 있었다.



나중에 나 혼자 방문한 적이 있다. 월요일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배가 너무 고파서 순대 1인분을 먹고 갔었다. 그 이후에도 한 두 번 방문을 했었다. 얼마 전 남편과 방문해서 국물 떡볶이와 참치 김밥을 시켜먹었다. 나오면서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1인(나혼자) 세트 시킬 걸 그랬어요.”

“그러게요. 그게 오히려 더 골고루 먹을 수 있을 뻔 했네요. 다음엔 그렇게 먹어요.”



그로부터 2주 후 쯤이었나? 지난 주였던 듯.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김밥장수로 갔었다. 그 날 남긴 순대와 김밥을 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 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도 아빠랑 2인 세트(너랑 나랑 세트)를 먹었다고 한다.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순대를 남겨왔고, 김밥은 다 먹은터라 나를 위해 하나를 포장해서 준 것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남편을 조금 오랜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8시에 시작된 박지연 작가님의 초대특강을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들어가 들었다. 앞 부분을 놓쳐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반 정도 들어서 감사하다. 남편을 기다리면서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음에도 감사하다. 남편이 올 때가 된 듯해서 길 건너편을 봤다. 초록불이 바뀌었고, 어서 건너갔다. 신호등 색깔이 바뀌기 전에 어서 탑승하고 안전벨트까지 착용했다.



“떡볶이 먹으러 안 갈래요? 배고프네.”

점심으로 계란과 고구마를 먹고, 뭐 특별히 챙겨먹을만한 것도 없었을터라 갔다. 하긴, 나도 사실 그집 김밥이 당기긴 했다. 다른 김밥집과는 다르게 전국팔도 각종 재료를 넣고 만든 김밥이라 신선하기도 하고. 오늘은 세트 메뉴에 어떤 김밥을 넣을지 고민하다 남산돈가스 김밥으로 선택했다. 지난 번에는 참치김밥을 먹어봤으니 말이다. 다음에는 또 다른 걸 바꿔 먹어봐야겠다. 남편이 가다랑어포 국물을 갖다 줬다. 이어서 단무지와 순대소금까지 갖고 왔다. 그동안 나는 서랍에서 수저를 꺼내 세팅했다. 곧 먹음직스러운 국물 떡볶이와 음료수가 나왔다. 사진을 미리 한 번 찍었다. 

순대와 튀김이 이어나왔다. 또 사진을 찍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예쁘게 썰어진 김밥이 나왔다. 아뿔싸! 김밥 위치를 잡다가 내 앞에 놓여 있던 순대 찍어먹을 소금이 담긴 그릇을 그냥 엎어버렸다. 옷에 말이다. 음식에 쏟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가다랑어포 국물이 쏟아진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가?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러 당황은 했지만 그래도 상황이 일찍 종료됐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는 소금을 다시 갖고 왔다. 



자리에 와서 다시 세팅을 하고 최종 인증 사진을 찍었다.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상을 보니 이제 수저가 바빠졌다. 먼저 튀김에 손이 갔다. 튀김은 이 집에서 처음 먹어보는 거라 더 그런 듯. 오징어튀김 2개, 긴 김말이튀김 1개, 게살 튀김 2개, 고추튀김 2개(원래는 1개지만 고추가 작아서 하나 더 주신다고 하셨다), 왕새우튀김 1개, 납작만두튀김 1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게 너랑 나랑 세트에 나오는 커플 튀김세트이다. 순대도 오늘 더 맛있었다. 그때는 다 식은 거였지만, 오늘은 막 찜기에서 꺼낸 걸 썰어와서 그런 것 같다. 튀김을 국물 떡볶이에 찍어먹는 맛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예술이다. 남편이 순대를 먹지 못하기에 어차피 순대는 남은 건 포장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아들이 잘 먹지 않는 허파는 거의 내가 먹고, 2개씩 들어있는 건 하나씩 내장을 먹었다. 아들이 가장 잘 먹는 찹쌀순대는 조금만 먹고 대부분은 가져가기로. 알알히 박힌 찹쌀이 보이는 게 다른 집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고 난 후 가다랑어포 국물 한 모금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남산돈가스 김밥은 멸추김밥보다는 별로였지만, 다른 집 돈가스김밥보다는 맛있었다. 어느 정도 먹고 있는데, 슬슬 가게 문을 닫고 정리하는 분위기라서 우리도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떡볶이 국물에 튀김과 순대, 김밥을 찍어 먹어 거의 국물이 없어진 것을 보고, 사장님이 국물을 추가해 주셨다. 감사하다. 김밥과 순대는 함께 용기에 넣어 포장해 줘도 되는 지 묻길래, 그리 해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벌써 아들이 좋아하며 먹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빠랑 같이 갔을 때도 너무 좋아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집으로 오는 내내 기분이 좋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벌써 9시 21분. 아들이 집에 왔을 시간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우리 집으로 가는 복도 문을 여니, 아들 방 창문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바깥 공기가 차서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보다, 오늘은 포장해 간 맛있는 음식을 먹일 생각에 더욱 현관문을 빨리 열고 싶었다. 남편은 엄지 손가락 지문을 갖다대면 한번에 열린다. 역시! 남편 마음도 나와 같았나보다. 아들이 들고 온 포장지를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식탁에 어서 포장 용기를 올리고, 뜯는 칼로 뜯어줬다. 물론 뜯어주기도 전에 손이 먼저 가서 포장이 예쁘게 뜯어지지는 않았지만. 허겁지겁 먹는 아들에게,

“아들, 누가 뺏어 먹어? 천천히 먹자. 체하면 약도 없어. 내일 시험도 보는 데 탈나면 큰일 나.”

걱정스레 말했지만 소용이 없다. 예상했던 장면이지만, 그것보다 더 좋아하는 아들을 보니 안 먹어도 배부르다. 아니, 사실 많이 먹었다. 내일부터 나흘 간 시험치느라 수고할 아들에게 좋은 선물 하나 준 듯 해서 뿌듯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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