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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Dec 01. 2023

아들과 순댓국 데이트

백일백장 글쓰기_13기_여든두 번째 글


아들이 오늘로써 나흘 간의 2차 지필평가가 끝났다. 중학교 3학년 2학기이므로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오늘은 영어와 사회를 보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나는 바로 출근을 해야 됐기에, 점심을 먹자마자 챙겨 집에서 나왔다. 막 육교를 올라가려 할 쯤이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집에 왔어요. 어디예요?”

“엇! 아들, 집에 왔구나. 엄마 이제 막 나왔는데. 이런 아들 얼굴 보고 나온다는 게. 엄마 오늘 도서관에 책 빌릴 게 있어서. 오늘 영어랑 사회 시험은 잘 봤어?”

“영어가 사회보다는 점수가 잘 나왔어요.”

90점이 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아들에게 격려를 해 주었다. 첫째를 키울 때는 뭐 자기가 알아서 내신 성적 관리도 잘하긴 했다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누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스스로도 선생님들이 누나와 자기를 비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빠도 누나와 차이가 나는 아들에게 버럭 소리부터 질러 주눅도 들어있던 게 사실이다. 나마저 아들의 기를 죽여놓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은 그저 80점 이상인 것에 감사하고, 수고했다고 해 줬다.     






오늘 6학년 남학생들 때문에 정말 혼을 다 빼고 수업을 했다. 더군다나 인수받아 처음 수업한 승현이도 있는데, 미안할 정도였다. 재형이와 태원이, 정환이. 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지도할 수 있을지가 내 숙제인 것 같다. 웬만하면 짜증도 내지 않고, 소리도 지르지 않고 싶은데, 오늘은 조금 더 과했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겠다.     

수업이 끝나고 어지럽혀진 교실을 조금 정리한 후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시험 끝난 기념으로, 또 스트레스받은 것도 풀 겸 순댓국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아들, 7시쯤에 집에서 출발해. 이따 순댓국집 앞에서 만나자. 엄마도 마저 정리하고 갈게.”

영어 선생님이 아까 빌려갔던 패드도 챙겨 오고, 내 교실에 있던 패드 2개도 패드 정리함에 넣어 잠갔다. 내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교재들도 정리한 후 히터까지 잘 껐다. 교실 등을 끄고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들과 함께 맛있는 순대를 먹을 생각에 아까 받은 스트레스도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순댓국집을 향해 가는데 아들이 중간에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순댓국집이 어디 있는지 까먹었단다. 바로 앞에서 헤맨 것 같다. 드디어 순댓국집 안으로 들어갔다. 홀 안에는 자리가 없고, 따로 비닐로 쳐서 주차장 부분에 확장시켜 놓은 장소 중 홀과 가까워 따뜻한 곳에 앉았다.

“여기 김치 순댓국 하나랑 신의주 순댓국 하나 주세요.”

들어가기 전 아들은 일반 순댓국을 먹는다고 했다. 나는 아들과 다른 김치 순댓국을 시켰다. 아들에게 다른 맛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서이다. 순댓국 정식도 괜찮지만, 오늘 아들은 그냥 순댓국만 먹는다고 한다. 나중에 다 먹고 보니 아들이 오기 전에 간식으로 시리얼도 우유에 말아먹고 와서 정식을 안 시키길 잘했다 싶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반찬이 세팅되었다. 뜨끈한 밥에 손을 얹는다. 손 씻은 물이 차가워 뭐라도 따뜻한 게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 그리고는 밥뚜껑을 열었는데, 하얀 쌀밥이 어찌 영롱한 빛을 띠는지. 질지도 고슬고슬하지도 않고 딱 맞게 익은 데다가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한 숟갈 뜨려는 찰나,

“김치 순댓국 어디세요?”

아주머니께서 물어보시기에 손을 들어 표하였다. 내 앞에 맛있는 김치 순댓국이 놓였다. 앞에 있던 부추를 반 조금 넘게 바글바글 끓는 순댓국에 부었다. 아들도 부추를 먹는다기에 남겼다. 아들 앞에도 곧 순댓국이 놓였다. 부추 접시를 얼른 잡아 아들 국에도 넣어줬다. 일단 사진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아들과의 추억 한 장 남겨야 되니까.

인증 사진도 찍었으니 이제 숟가락이 바쁠 차례이다. 국물이 뜨거웠지만 후후 불면서 한 숟가락 입에 넣어본다. 조금 싱거워 새우젓 국물만 반 숟갈 떠서 간을 맞춘다. 아들도 곧 따라 한다. 안에 양념장이 있는데 아들이 처음에는 다 섞지 않고 먹는 것이다. 그런 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나도 그랬던 적이 많았다. 오늘은 다 섞어 먹었는데, 아들한테도 이야기해 줄 걸 그랬다. 오랜만에 순댓국을 아들과 먹어 그런지 아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이다. 내 순댓국에 있는 김치순대도 하나 건져서 먹어 보라고 했다.     






먹으면서 아들은 요즘 한창 관심 있어하는 세계사 공부했던 부분을 나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다. 시험 기간인데도 한 분야에 빠지면 백과사전까지 펼쳐보며 열성을 다하는 우리 아들. 그 모습은 어릴 때부터 변함이 없다. 분야가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올라가면 세계사를 선택과목으로 정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댓국 먹으랴, 세계사 이야기하랴 바쁜 아들의 입을 보고 있자니 그냥 행복하다. 아까 말 안 듣는 6학년 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착한 아들에게 감사가 절로 나온다. 아들과 이런 시간을 더 자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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