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하트 여왕의 장터
"야, 전화 안 받아? 내가 그때 도와준 게 얼마야.
그 돈으로 좋을 때는 편하게 썼으면서 갚을 때는 폰 꺼?"
아침 일찍부터 명자 씨의 하루는 전화와 고함으로 시작된다.
병실 안 환자들은 벌써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벽을 뚫고 간호사실까지 울린다.
60대 중반. 체구가 큰 여자.
이 병실에선 존재 자체가 하나의 파장이다.
명자 씨는 자신을 "평균 이상을 찍고 사는 여자"라고 소개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그냥 명자라고 불렀다.
"내가 지인한테 돈 빌려준 게 얼마인데, 지금 와서 싹 발 빼고 튄다?
사람이 이렇게 양심이 없어도 되는 거야?"
그녀는 하루 종일 전화를 붙든다.
상대방이 전화를 끊으면 또 다른 번호를 누르고, 목소리를 한 톤 더 높인다.
"어휴, 병실에서 전화 그만하시죠…"
미선이 조용히 말했을 때, 명자 씨는 대꾸도 안 했다.
그녀에겐 다른 사람의 불편보다 자기 일이 먼저였다.
수납 관련해서 물으면 명자는 버럭 한다.
"아니, 내가 병원비 떼먹을 사람처럼 보여요?
지인들한테 조금씩이라도 카드 긁으라고 했어요.
뭐, 지금 돈 없다고 나가라고 해요?"
그리고는 병실 전화기 옆에서 다시 누른다.
"야, 카드 좀 가져와. 당장."
그녀의 말은 과장과 비명이 섞여 있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고,
여러 일을 하며 버티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후엔 외출증을 끊고 나간다.
몇 시간 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돌아온다.
환자복 위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손엔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일 좀 했어.
이거 음식이랑 반찬이야!
은지 네가 나눠줘~ 나 이래 봐도 일머리 하나는 끝내줘."
땀에 절은 머리, 발에서 풍기는 냄새, 강한 음식 냄새까지 합쳐져
병실 공기는 순간 장터가 된다.
공동 물품을 당당히 가져간다.
"병원비 내잖아. 그럼 다 같이 쓰는 거지.
내가 이 방 오래 있었거든? 그럼 좀 쓸 자격은 있지 않나?"
말투는 싸납고, 눈빛은 부딪힐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하루는 누군가가 자신 몰래 간호사에게 항의한 걸 눈치챘다.
그날 밤, 명자 씨는 물컵을 쿵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아. 앞으로 내 거 내가 산다.
근데 봐라, 나 없는 동안 물품 누가 채우나."
침묵.
병실은 그날 이후 명자의 물건을 쓰지 않았다.
명자 씨는 불편한 사람이었다.
거침없고, 거칠고, 시끄럽고,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그녀가 거울 앞에서 립스틱 하나 꺼내는 걸 봤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고, 그녀는 잠시 손을 멈췄다.
"내가 이렇게라도 안 꾸미면… 진짜 내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모른다니까."
그녀가 퇴원하던 날, 가방은 부풀었고, 표정은 늘 그렇듯 당당했고, 말은 거칠었다.
"나 또 올 수도 있어. 어차피 이 병은 완치도 없어.
근데 나 이번엔 진짜 정리할 거야.
그리고… 다음에는 병실에서 보지 말자"
우리는 웃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항상 웃기지만, 그 웃음이 끝나면 왠지 슬퍼지는 구석이 있었다.
✏작가의 메모
"명자 씨는 거친 말로 살아남고, 거짓 당당함으로 자기 체면을 유지했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건 그 거침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맨얼굴을 보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